떨리는 어깨에게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건
어쩌면 그 사람의 잘못을 잊는 일이 아니라,
그 상처를 껴안고 살아온 나를 받아들이는 일인지도 모른다.
오래도록 나는 타인을 원망했지만,
가장 미워했던 건 어린 시절의 나였다.
겁이 많고, 눈치만 보던 그 아이를.
얼마 전, 아이들과 함께 지내던 주말 오후의 일이었다.
그날도 어김없이 첫째가 짜증을 터뜨리고 있었다.
“너 자꾸 그러면 다시는 안 놀아줄 꺼야!”
둘째 아이는 떼를 조금 더 많이 쓰는 아이다.
나는 그 행동을 짐작하며 ‘또 고집을 부렸겠지’ 싶었다.
그런데 첫째가 쏟아내는 말들이 어딘가 익숙했다.
그건, 내가 둘째를 혼낼 때 쓰던 표현이었다.
무의식 속에서 흘러나온 내 말투가
첫째 아이의 입에서 그대로 되돌아와
내 목을 쥐어 틀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첫째를 달랬다.
“동생도 마음이 있었을 거야.
조금만 따뜻하게 이해해 줄 수 있을까?”
그리고 둘째를 안았다.
나를 닮은 피부를 한 작은 어깨가 조용히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 떨림 위로, 수십 년 전의 내가 포개졌다.
고모네 집 사나운 치와와가 짖으면
아버지의 다리 뒤로 숨었던 겁 많은 아이.
코피가 터져 얼굴이 피범벅이 되어도
꾸지람만 듣던 말 없는 아이.
아버지의 서슬 퍼런 눈빛과
낯선 어른들의 시선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던 아이.
나는 오랫동안 내 안의 그 아이를 미워했다.
어른들은 “남자애가 왜 그렇게 쭈뼛거리냐”며 핀잔을 주었고,
아버지는 “크게 말해, 또박또박 말해!” 하고 버럭 화를 냈다.
그렇게 덩쿨처럼 자라난 ‘부끄러움’은,
내 삶 곳곳에 오래도록 남아 나를 옭아맸다.
나는 그 아이의 침묵을 경멸했다.
어른이 된 뒤에도 그 아이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속에서 차가운 분노가 치밀었다.
'네가 그렇게 나약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더 화를 내셨던 거야.'
'네가 그렇게 주눅 들어 있었기 때문에, 엄마는 더 불행했던 거야.'
그 모든 책임을,
나는 내 안의 가장 약한 존재에게 미뤄두고 있었다.
그 지독한 자기혐오의 고리가 끊어지기 시작한 건
내가 아빠가 되고 나서였다.
내 품에 안긴 작은 존재를 보며
나는 서서히 깨달았다.
아이의 두려움은 다그쳐야 할 나약함이 아니라
지켜주어야 할 여린 순수였고,
아이의 미숙함은 실망이 아니라
사랑으로 채워야 할 성장의 과정이었다.
그 아이는 단지 살아남으려 했을 뿐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분노 앞에서,
안전하지 않은 세상 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버텼던 것이다.
침묵은 비겁함이 아니라
상처받지 않기 위한 방패였고,
겁 많은 마음은
위험에서 지켜달라는 외침이었다.
그 아이는 그저,
사랑받고 싶었던 평범한 아이였다.
나는 이제 그 아이에게
아주 오래된 용서를 보낸다.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었어.
그 모든 시간을 혼자 버텨내느라 정말 애썼다.
그렇게 살아남아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줘서 고마워.”
둘째는 나를 꼭 안았다.
그리고 내 귓가에 속삭였다.
“아빠, 좋아.”
“그래, 아빠도 너 좋아.”
나도 아이를 꼭 끌어안고 등을 토닥였다.
잠시 후, 아이는 언니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미안해…”
금세 또 다툴 것 같더니
어느새 둘 다 바닥에 엎드려 블록을 쌓기 시작했다.
한순간도 같지 않은 표정으로,
서로를 밀고 당기며 다시 웃고 있었다.
“이거는 너 줄게.”
“그럼 언니는 이거 해.”
그 작은 대화 속에,
나는 내가 가지지 못했던 날들을 그려보았다.
‘아빠 좋아’
귓가에 닿은 조용한 고백은
어깨를 떨고 있던 어린 나에게 닿았다.
그 순간,
내 ‘두 번째 삶’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 아니라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로 깊어졌다.
상처가 깊을수록
우리는 종종 타인보다
자기 자신을 더 혹독하게 탓하곤 합니다.
당신의 마음속에도
날 선 비난에만 익숙해진 ‘어린 당신’이
조용히 숨 쉬고 있지는 않나요?
오랫동안 외면해왔던 당신 안의 그 아이에게
이제는 조용히 손을 내밀어주세요.
그 손길이 바로 당신이 찾던 구원이자,
당신이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랑의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당신만이 당신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