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내게 남긴 것

존재는 사라지고, 흔적은 남는다

by 준희최

교회를 마지막으로 떠나던 날,

나는 낡은 계단 위에 잠시 멈춰 섰다.


여름의 햇살은 무심히 내리쬐었고,

눈앞이 순간 하얘졌다.


따뜻한 피난처였고,

간절한 기도였으며,

결국엔 차가운 절망이기도 했던 그곳.


나는 그 모든 시간을 뒤로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골목으로 사라졌다.




나는 오랜 시간 교회를 다녔다.


그곳은 내게 따뜻한 피난처였다.

예배 후 주름진 손으로 밥을 퍼주던 권사님의 눈빛.

시끌벅적한 웃음과 따뜻한 미소

그 모든 것이 나를 안아주었다.

그 공동체 안에서, 나는

내 안의 많은 부분들이 채워지는 것을 느꼈다.


평범한 행복이 허락된 공간에서,

나는 웃음으로 내 안의 결핍을 감췄다.

누군가가 나를 들여다볼까봐,

늘 말끝을 돌리곤 했다.




날이 갈 수록 집안의 분위기는 안좋아지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오면 냉랭한 공기는 더욱 선명해졌다.


그건 어쩌면

다른 이들의 삶의 온도와 나의 삶이

대비됐기 때문일도 모르겠다.


벼량 끝에 매달린 심정으로

울며 기도하던 어느 날 밤,

그 기도회를 주관하던 분이 이런 말을 했다.


"여러분은 여기 울기 위해 온게 아닙니다.

주님을 찬양하기 위해 온 겁니다.

자신을 위해 눈물 흘리지 마십시오."


눈을 떴을 때, 그 분과 눈이 마주쳤다.

살기 위해서 뜨겁게 몸부림치던 나는

마음이 빠르게 식어감을 느꼈다.


천천히,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살기 위해 팔딱거리던 소년의 몸부림은

어둠 속에 천천히 잠겨들었다.


그들이 말하던 사랑

기도하던 손

거룩한 얼굴들

그것들은 나의 삶과 동떨어져 있는

동산 너머의 신기루처럼 느껴졌다.




나는 마침내 교회를 떠났다.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밤이 거듭됐다.


나는 내 안에 오래 고여 있던 질문들을

대신 품어줄 문장을 찾기 시작했다.

겨울밤의 숨결과 같은 니체와

새벽의 고독과도 같았던 쇼펜하우어

그들과 함께 나는 피흘리며 추락했고,

카프카와 톨스토이는 낡은 책상 냄새 속에서

나와 함께 거친 기침을 내뱉었다.


다시 삶의 표면 위로 떠오르기까지 수년이 흘렀다.




신이 응답이 없었기에

그들도 내게 사랑받지 못했다.

내가 그들을 사랑하지 못했다.

그들 또한 나처럼 불완전한 존재였음을

어쩌면 나처럼 해답을 찾아 헤매온 사람들이었음을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들이 내게 준 것들은 완전한 구원은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 어떤 씨앗이 되어 내 안에 남아 있었다.


예배 후의 밥 한 끼,

어린 나를 향한 손짓 하나.


그것들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누구에게도 따뜻함을 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여전히 말없이 닫힌 사람으로

남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교회는 이제 허물어졌다.

그 자리에 다세대 주택이 들어섰고,

사람들은 다른 지역, 다른 교회로 흩어졌다.

나는 가끔, 일부러 그 교회 앞을 지나가곤 했다.

계단 위에 옹기종기 모여 웃고 떠들던 그 시절을 떠올리다

문득, 오래 전의 나를 마주치고는

고개를 저으며 돌아서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가 누군가에게 베푸는 구원이란

하늘에서 내려오는 동아줄 같은 것이 아닐지 모른다.

따뜻한 말 한마디,

부드러운 눈길 한 번,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따뜻한 장면 하나.


십 년, 이십 년이 지나

삶의 어딘가에서 문득 피어나는 작은 꽃처럼.


그 때는 나도, 그들도 몰랐다,

그 시절의 우리는 서로에게

미래에 싹틀 구원의 씨앗을

조용히, 조용히 심어두고 있었다는 걸.






작가의 말


우리는 살아가며

수없이 관계를 맺고,

서로에게 작고 조용한 흔적을 남깁니다.


어떤 것은 상처로 남고

어떤 것은 추억으로 남습니다.


그들이 내게 심어 놓은 씨앗은

나의 아이들에게, 친구와 동료에게

아내와 이웃들에게 또 다른 씨앗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나는 그것들을 어루만지며

이제야 비로소 그들을 추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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