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너와 나의 밤

마음 곁에 오래 머무는 일

by 준희최

위로보다 침묵이 더 다정한 밤이 있다.

그저 한 사람의 곁 옆에 조용히 머무는 일.


말하지 못한 마음과,

말없이 건네는 마음이

나란히 앉은


어린 너와 나의 밤




그 후배는 푸근한 인상에 순박한 웃음이 매력적이였다.

일에 대해서는 집요하리만치 성실지만,

가끔 혼자 끙끙거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왜 저리 혼자 애쓰고 있지?’

그런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런데 사람들 사이에선

“조금… 특이한 술버릇이 있다”는 말이 돌았다.

“술만 마시면 자책이 심해져요.”

누군가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믿기 어려웠다.

내가 아는 그는 온화하고 섬세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회사에 우리 둘만 남은 저녁이었다.


말은 없었지만,

이상하게 그날따라 그의 마음이

내 쪽으로 조금씩 기울어지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과장님, 한잔할까요?”


“아유 좋죠.”

기다렸다는 듯, 그는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익어가는 삼겹살 위로 몇 잔의 술이 오갔다.

사람 이야기, 일 이야기, 가볍고 웃긴 에피소드 몇 개가

서로 간의 간격을 조금씩 덜어냈다.


잠깐의 침묵.

지글거리는 불판 위로 연기가 피어올랐고,

그 연기가 말하지 않은 이야기들까지

조금씩 덮어주는 듯했다.




그리고 그가 입을 열었다.


“저번 주에 상무님과 출장 다녀왔을 때,

제가 실수한 게 자꾸 마음에 걸립니다.”


그는 업체와의 회식 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꺼냈다.

의견 충돌이 있었고,

그는 그게 전적으로 자신의 탓이라며

술김에 자신의 뺨을 내리쳤다고 했다.


나는 놀라서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는 겸연쩍게 웃었지만,

그 모습은 어딘가 애처로웠다.




“자신을 잘 다독여야지, 왜 벌을 줘.”


나의 나지막한 말에,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조심스럽게 오래된 이야기를 꺼냈다.


고등학교 때,

동생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


그 이후 남겨진 가족들의 무거운 공기,

그리고 말하지 못했던 감정들까지—

그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나는 그의 말을 조용히, 끝까지 들었다.

모든 이야기가 끝났을 때,

나는 마치 내 안의 다른 사람이 말하듯,

아주 느리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너는 너를 탓하고 있는 거구나.”


그 한마디에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동시에 오랜 시간을 건너 온 어린 나의 눈빛도 그러했다.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서

자신을 이해하고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밖에 없어."


어린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가 그 상처를 보듬어야

다른 사람의 아픔도 더 크게 품을 수 있어.


그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회사에서는… 처음 이야기해보는 겁니다.”


“그래. 말해줘서 고맙다.”


잔을 부딪쳤다.

술이 잔 안에서 가볍게 일렁였다.




몇 번의 잔이 더 오갔고,

나는 조용히 손을 흔들며 먼저 일어났다.


무엇이 그를 내게 마음을 열게 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 내내

그 겸연쩍은 웃음이 마음에 남았다.


‘어린 너를 안아줘야지…’


나는, 그때 차마 다하지 못한 말을

뒤늦게 혼잣말처럼 되뇌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마치 어린 모습의 후배가

조용히 꾸벅, 인사하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그 아이의 얼굴이,

어느새 오래전의 나와 겹쳐졌다.






작가의 말


누군가의 오래된 상처 곁에

가만히 앉아본 적이 있으신가요.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말없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덜 아프게 느껴지는 밤이 있습니다.


어쩌면 나도 내 안의 오래된 감정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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