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머무르는 연습
골목 끝까지 따라오는 울음소리.
외할머니의 손을 놓지 않으려 버티는 작은 어깨.
나는 그 장면 앞에서 늘 같은 자리,
같은 마음으로 서 있다.
장모님 댁에서 집에 돌아올 때면
늘 아이들과 외할머니의 눈물의 이별이 예정되어 있다.
눈물을 뚝뚝 흘리는 아이의 작은 어깨를
외할머니는 한참 동안이나 놓지 못한다.
흐느끼는 소리가 골목 어귀까지 따라붙고,
마지막까지 손을 흔드는
작은 손과 주름진 손의 애틋한 풍경이
백미러 너머로 멀어져 간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들은 한참을 울고, 달래고, 또 다음을 기약하고서야
겨우 잦아든다.
매번 반복되는 풍경인데도
나는 그 장면을 볼 때마다 낯선 감정에 머뭇거린다.
그들은 저렇게 온 마음을 쏟아내는구나.
저렇게 아낌없이 주고받을 수 있구나.
어떤 날은 그 아이들의 울음이 부럽기도 하고,
어떤 날은 그 감정의 충만함이
나와는 다른 먼 세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친척들과의 만남이 늘 어색했다.
북적이는 대가족의 명절 풍경 속에서
나는 늘 방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누군가 말을 걸까 봐,
내게 시선이 꽂힐까 봐
애써 고개를 숙이거나 책을 뒤적였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어디에 앉아야 덜 눈에 띌지도 고민이었다.
설날이든 추석이든,
나의 어린 시절은 ‘모른 척’과
‘빨리 지나가라’는 바람 속에서 흘러갔다.
감정을 숨기는 것이 익숙했다기보다,
감정을 꺼낼 줄 몰랐다.
아이들은 그런 내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외가 식구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웃고, 안기고, 울며 헤어진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는
매번 익숙한 어색함과 낯섦을 동시에 느낀다.
가끔 생각한다.
아이들은 나처럼 혼자 감정을 삭이느라
밤에 이불을 끌어안은 채
속으로 삼키는 법을 배우지 않아도 되겠구나.
그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그리고 또 한편으론,
내가 아직도 그 방식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아이들이 외할머니에게 서운함을 토로하다가도
금세 품에 안겨 위로받는 모습을 보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감정이 물 흐르듯 막힘없이 오가는
저것이 진정한 소통이구나.
나에게는 없었던 감정의 통로가
저들에게는 저토록 자연스럽구나.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걸기까지,
나는 얼마나 많은 마음속 시뮬레이션을 거치는가.
상대가 나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걱정하며
끝내 입을 다물었던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 모든 순간마다
혀끝에서 맴돌던 수많은 말들이
결국 목구멍으로 다시 삼켜지며,
내 안에서 차갑게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그 차가움이
내 마음의 벽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말을 하지 않는 건 편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한마디를 꺼내는 데
너무나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타고난 ‘성격’이 아니라,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만들었던 나의 방식이었다는 것을,
내가 자라온 환경이 나를 그렇게 길들였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아이들이 외할머니 품에 안겨 우는 걸 보며
기쁘면서도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
그 품과 울음은,
내가 어릴 적 가질 수 없었던 온기었음을
아이들은 모를 것이다.
그리고 이젠 그 풍경을 함께 바라보며,
아이들의 마음을 아내와 나누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 울음을 안쓰럽게 보듬으면서도,
아이들이 그렇게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맙다.
나는 근본적으로 변한 게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 자리에서
조금 더 오래 머무를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말없이 아이들의 울음을 기다리는 일이,
예전보다 조금은 덜 어색해진 것.
그 아주 작은 변화가
나에게는 꽤 큰 의미로 다가온다.
어색한 시선,
말하지 않아도 떠오르는 감정들.
그 모든 것이
나를 한 발짝 뒤로 물러서게 만들었습니다.
나는 '조금 더 오래 머무르는' 서툰 연습을 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내가 받지 못했던 것과
아이들에게 남겨야 할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