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이 숨쉬는 자리
왜 어떤 아픔은,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걸까.
가벼워질 것을 알면서도,
혀끝까지 올랐다가 삼켜버린 이야기처럼
그것은 아마,
나의 가장 내밀한 고통이
타인의 흔한 위로 속에
빛바래는 것이 두려워서일지도 모른다.
어떤 날은, 유난히 고요하다.
거리엔 비가 내리고, 마음에도 잔잔한 빗소리가 퍼진다.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고,
그저 나 자신과만 단단히 마주하는 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도,
참 많은 말을 속으로 삼키는 순간들.
빗물이 길을 적시듯 내 안의 아픔도 고요히 스며든다.
사람들의 잔상 속에 눈빛은 스쳐 지나가고 말은 빗소리에 묻힌다.
아픔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히 무게를 더해간다.
빗소리처럼 마음을 채우는
이 먹먹한 충만함을 누군가와 나누고 싶다.
그 순간만큼은 혼자가 아닐 것 같아서.
젖은 옷가지처럼 무거운 마음을,
잠시라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숨쉬기조차 버거운 이 감정의 덩어리가
기적처럼 가벼워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혀끝을 맴도는 단어들은,
번번이 목구멍 안으로 미끄러져 사라진다.
드러난 적없던,
온전히 나의 것이었던,
그 고귀한 아픔이
타인의 시선과 입김에 닿아
한숨 속에 희미해질까 봐.
흔한 위로 속에
남들 같은 흔한 이야기로,
낡은 사진으로 분류되고 사라질까봐.
나는 차라리 모든 감각을 나만의 세계에 가두기로 하고
입을 닫아버렸다.
어려서부터 말을 건넬 대상이 많지 않았다.
집은 늘 조용했고,
말의 부재는 서늘한 공기처럼 내 곁을 맴돌았다.
아픔을 드러내는 방식도,
위로를 건네는 법도 알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 비밀스러운 씨앗을 싹 틔우듯,
감정은 쌓여 내 안에서 조용히 숨을 쉬었다.
그렇게 태어난 침묵의 언어는,
타인의 귀에는 닿지 않는
오직 나의 내면에서만 울리는 고유한 소리로
익숙하고 안전하게 날 보호했다.
‘드러내지 않는 것’
이 감정들은 동화 속 이야기처럼
모른 척하고 끝내고 싶은 이야기였다.
그것이 존엄을 지키는 일이라 나는 믿었다.
마음속에서 곪아가던 것들은 결국 터져 나왔다.
당연한 척 했던 행복은 낯설었고,
사랑스런 아이들의 웃음은 서글펐다.
침묵은 끝내 날 질식시켰다.
내가 붙잡을 수 있었던 건 글 밖에는 없었다.
마치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긴 시간을 돌고 돌아 맑은 샘물이 되어 돌아오는 것처럼,
나의 침묵은 글이 되어 흐르기 시작했다.
가장 투명하고 정직한 형태로.
그래서 나는 지금, 이 글을 쓴다.
여전히 어떤 아픔은 고요히 숨 쉬며 나를 찾아오지만,
이제는 그걸 나만의 밤에 묻어두지 않는다.
웃음처럼, 때로는 울음처럼,
허공에 흘리듯 조용히 써 내려간다.
텅 빈 지면 위에 나의 숨소리를 각인하듯.
아픔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비에 젖은 길처럼,
속으로는 깊게 스며든 채로.
하지만 그 고요한 숨소리는
이제 나를 갉아먹는 침묵이 아니라,
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가장 진실하고 강렬한 울림이 된다.
이 빗줄기 아래,
나는 오늘도 나의 밤에 글을 묻는다.
아마 영원히 끝나지 않을 나만의 의식처럼.
‘두 번째 삶’이라 쓴 이 바탕에
무엇을 채워나가고 있는지 아직도 나는 알지 못한다.
그저 메아리치는 감정들을 글로 써내려 갈 뿐이다.
어릴 적 내 곁엔 늘 침묵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되었습니다.
숨기기만 해선 결코 사라지지 않는 감정들이 있다는 것을요.
나는 그 뜨겁고 아픈 감정을 꺼내
가슴에 꽉 안아보았습니다.
그것은 글 속에서 천천히 숨을 쉬었고
눈물과 위로가 되어 내 안에 스며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