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 수다떨기

평범하지 않은 평범한 날

by 준희최

가끔은, 거창한 깨달음보다

아무 일도 없던 하루의 끝에서 더 큰 위로를 받곤 한다.


시시콜콜한 웃음과 사소한 온기들이 모여,

마음의 빈 곳을 조용히 채워주는 그런 날.


늘 그랬던 것 같지만 늘 그렇지 않고,

영원할 것 같지만 결코 영원하지 않기에

더없이 소중한, 평범하고도 기적 같은 하루.





회사 ‘패밀리데이’라 일찍 퇴근해

아내와 쌀국수를 먹으러 갔다.

늘 지나치기만 했던 곳,

언젠가 한번 가자고 말만 하던 가게였다.


뜻밖에 맛있었고,

그 사실만으로도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배도 부르고, 새로운 맛집을 발견한 기쁨도 있어서

우린 흐린 날씨를 핑계 삼아 동네를 산책했다.


“요 며칠 더웠는데,

이렇게 흐린 날씨가 오히려 좋네.”

그 말에 맞장구치며,

시시콜콜한 수다를 한참 떨었다.




걷다 보니 큰아이가 하교할 시간이었다.

마중 갈까 싶어 골목을 지나는데

우연히 마주쳤다.


“아빠~!”

달려오며 자랑한다.

오늘도 반에서 글쓰기 상을 받았단다.

역시 우리 딸.


아내는 둘째를 데리러 간다고 헤어졌고,

나는 큰아이가 놀이터에서 노는 사이

글을 써보려고 했다.


썼다가 지웠다가,

고개를 기울였다 다시 돌리고,

한참을 하늘만 올려다보다가

결국 아무것도 못 썼다.


브런치에 글을 올린 이후로

요즘 내가 그렇다.




집에 들어오니, 둘째가 하원을 마쳤다.

현관에서 날 보더니,

“아빠~” 하며 그대로 품에 안긴다.


그 아이 특유의 속도와 온기,

그저 안긴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세상이 다 부드러워지는 기분이다.


이내 큰 아이가 다가와 진지하게 말한다.

반 친구들이 코로나가 또 유행할 거라면서

열 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책에서 본 내용을 또박또박 설명해 준다.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아마도, 자기도 아플 때 그렇게 해달라는 뜻이겠지.




저녁을 먹는데,

“치매가 뭐야?” 하고 묻는다.

어디서 봤는지.

“무섭고 슬픈 병이야”라고 했더니

애들이 눈물을 글썽인다.


밥을 먹다 말고

다시 품에 안겨 운다.

괜찮다고, 한참을 토닥여줬다.


식사가 끝나고는 숙제를 봐주는데

수학 문제 풀이법을 놓고

누가 맞네 틀리네 하다가

우리 집에 또 작은 ‘학회’가 열렸다.


빨래를 널며 아내와

“건조기 하나 살까?” 같은

시답잖은 수다를 나눴다.




아직 혼자 잠들기 무서운 둘째는

아내와 방으로 들어가고,

나는 혼자 남아

조용히 오늘을 돌아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손끝으로 더듬듯 기억을 되짚는다.


어떤 건 뾰족하고,

어떤 건 말랑하고.


마치 연못 위에 물감을 띄우듯,

마음을 조심스레 펼쳐보다가—

문득,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떠올라

피식 웃어버리면

겨우 모양을 갖추던 색들이

그만 다 흩어져 버린다.


왜 이리도 행복한 것일까.

그리고 왜 이리도 슬픈 것일까


오늘은 이만 자야겠다.


그냥 허공에라도

수다를 떨고 싶은 밤이다.






작가의 말


어쩌면 ‘두 번째 삶’이란,

과거의 상처와 씨름하면서도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마주하게 되는

이런 소박한 하루 속에

이미 조용히 깃들어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그런 생각을 잠시 해보았습니다.


아직은 모든 것이 희미하고 서툴지만,

이런 보통날들이 차곡차곡 쌓여

언젠가는 단단한 길이 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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