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레를 끊어내려는 나의 싸움
어떤 기억들은 시간이 지나도 옅어지지 않는다.
특히 몸에 남은 기억들은 더 그렇다.
스치듯 와 닿았던 손의 감각,
귓가에 박힌 날카로운 말 한마디.
얼마 전, 아이와의 대화가
나를 그 오래된 기억 앞으로 데려갔다.
“그때 미안했어.”
어느 날, 문득 큰아이에게 말했다.
아이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동그란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왜, 뭐가?”
“아빠가 이마 콩, 때린 거.”
아이는 그제야 기억이 났는지 작은 손으로 이마를 만졌다.
그리고는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이잉, 아빠 왜 그랬어.”
“그때 기억이 나? 어렸을 땐데?”
“응, 나지. 아빠가 무섭게 콩, 때렸어.”
만 세 살 때의 기억이 아이에게 ‘무섭게’라는 인상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
내 심장에 박힌 가시처럼 오래도록 아팠다.
그리고 그 순간,
내 안에 오래된 기억 하나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뺨의 기억.
둘째 아이 돌 사진을 찍으러 갔을 때의 일이다.
큰아이는 만 세 살이었다.
한창 낮잠을 자던 시기라, 촬영 내내 아이의 컨디션이 틀어질까 조마조마했다.
다행히 촬영은 무사히 마쳤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결국 잠투정이 시작됐다.
어찌어찌 달래서 카시트에 앉히려던 순간,
아이가 갑자기 손으로 내 눈을 때리고 심하게 떼를 쓰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욱하는 마음이 치밀어 올랐다.
피로와 긴장, 아이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대한 당혹감이 뒤섞이며 이성이 무너졌다.
망설일 틈도 없이, 나의 손이 아이의 이마를 향했고,
나는 아이 이마를 찰싹, 때렸다.
옆자리에서 그 모습을 본 아내가 날카롭게 나무랐다.
“그렇다고 애를 때리면 어떡해!”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복잡한 마음이 되어 말없이 운전대를 잡았다.
아이의 울음소리와 아내의 나무라는 소리가 귓가에 뒤섞이는 가운데,
그 소음 속에서 문득, 아주 오래된 감각 하나가 치밀어 올랐다.
일곱 살, 뺨에 와 닿던 뜨거운 열기였다.
나는 그 기억 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고모네 집에서 키우던 치와와 '아롱이'가 있었다.
작지만 사나웠던 아롱이가 나에게 맹렬하게 짖으며 달려들었던 기억.
혼비백산하여 정신없이 아버지에게 매달렸던 순간.
아버지는 얼떨결에 나를 안았다가,
나를 땅에 내려놓으며 그대로, 나의 뺨을 때리셨다.
“병*새끼…”
그 짧고 날카로운 말이 어린 나의 귓가에 박혔다.
나는 얼얼한 뺨을 하염없이 문질렀다.
친척들 앞에서 창피하셨던 걸까,
왜 맞았는지, 내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방에 들어가라고 소리쳤다.
나는 누구의 방인지도 모르는 곳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침대에 앉아 있었다.
문 너머에서는 고모와 삼촌들이
아버지에게 “애한테 왜 그러냐”고 나무라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아버지는 “왜 병*같이 도망을 쳐, 도망을 치긴!” 하고 역성을 내셨다.
그 속에서 나는 조용히, 분노의 주먹을 허공에 휘둘렀다.
‘나쁜 강아지새끼!’
아무 힘도 없는 어린 주먹으로, 억울함을 겨우 감당하고 있었다.
집에 돌아갈 때쯤, 고모가 내 손에 조심스레 용돈을 쥐어주셨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던 그 측은한 눈빛이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 남았다.
일곱 살의 뺨, 그리고 세 살의 이마.
시간은 흘렀지만, 폭력의 풍경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었다.
나는 내가 그토록 경멸했던 아버지의 모습을,
가장 사랑하는 딸 앞에서 그대로 재현하고 만 것이었다.
그 끔찍하고 선명한 깨달음이,
내 안의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
그날 이후, 나는 종종 아이에게 "그때 미안했다"고 사과한다.
그것은 단순히 아이에게 잘못을 빌기 위함만은 아니다.
그것은 "미안하다"는 말을 통해,
'나는 아버지와 다른 사람이 되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결연한 의식이다.
폭력의 굴레를, 내 대에서 반드시 끊어내고 말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이다.
일곱 살의 나는 맞은 뺨을 쓸어내리며
홀로 아픔을 감당해야 했다.
왜 맞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수치심과 혼란 속에 방치된 채로.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내가 아이에게 잘못했을 때,
그 자리에서 인정하고 사과하며,
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주려 노력한다.
무엇보다,
내 안에 남은 오래된 분노와 상처가
불쑥 올라와 아이에게 향하지 않도록,
매 순간 내 감정을 살핀다.
나의 분노가 그저 내게 속한 감정인지,
아이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한 것인지,
아이를 탓하고 원망하기 위한 것인지,
어제의 나와 싸우고,
오늘의 나를 조율하는 일.
그 고독하고 치열한 과정 속에서,
나는 내가 되고 싶었던 어른의 모습을 조금씩 닮아간다.
그리고 그 사과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던 그날의 폭력에 대해,
어른이 된 내가 처음으로 책임을 지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해받거나 용서받기를 기다리는 대신,
나는 스스로의 상처에 책임지는 어른이 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나는 더 이상 무력한 아이로 남지 않는다.
나의 '두 번째 삶'은,
그렇게 외면하고 싶었던 기억과 싸우고,
"미안하다"는 말을 배우며,
스스로의 상처에 책임을 지는 어른이 되어가는 시간이다.
그 서툴고 더딘 걸음 속에서,
나는 아주 조금씩,
그때의 나에게 있었어야 할 아빠의 모습이 되어간다.
이것은 나의 아픈 고백이자,
내 아이들에게 보내는 간절한 약속입니다.
상처는 또 다른 상처를 낳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는 믿습니다.
그 상처를 마주하는 용기를 낼 때,
우리는 비로소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