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류연재

남편의 독침

그럼에도 불구하고

by 준혜이

나는 왜 이런 남자랑 결혼을 했지, 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에 사로잡혀 내가 남편이 있는 미래를 내팽개치지 않은 건 남편에게도 내가 왜 저런 여자랑 살고 있지, 라는 생각이 파고든 순간이 있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순간을 영원으로 만들면 결혼생활은 끝난다.


이런 깨달음에도 나는 이틀 전 뉴욕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내가 왜 이런 남자와 결혼한걸까, 고민했다.


사람 많은 지하철에서 좌석을 양보받아 딸아이를 앉히고 나는 그 앞에 서 있었다. 남편은 지하철 문 쪽에서 유모차를 잡고 있었다. 지하철이 출발하고 얼마지나지 않아 코를 찌르는 악취와 알아들을 수 없는 혼잣말로 비틀거리는 남자의 몸이 나에게 다가와 부딪쳤다. 나는 작게 악소리를 내고 남편을 눈으로 찾았는데 남편이 씩씩거리며 화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남편은 사람들 틈을 유모차로 뚫고 우리 곁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자가 사라지고도 남아있는 남편의 분노는 딸아이에게는 들리지 않고 나에게만 들리는 나쁜 말이 되었다. 남편은 자신이 그 남자 등에다 침을 뱉었다며 나를 보고 칭찬해달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결혼하기 한 달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분노에 휩싸인 남편이 사람에게 침을 뱉은 것이다. 그 때 나는 결혼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했었다. 결혼식을 취소하고 난 뒤의 일 처리를 생각해보니 차라리 결혼식 당일에 식장에 들어가지 않는 게 나을 듯 해서 나는 누구에게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언제부터 입 속에 침을 모으고 있었냐고 남편에게 물어봤다. 대답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오래 전 티비에서 서로에게 침을 뱉으며 싸우는 동물을 본 적이 있다고 남편에게 말하다 눈물이 찔끔 나올 만큼 크게 웃고 말았다. 그리고 화가 나면 대부분 잘 참는 내가, 남편에게만은 참지 않는 게 미안했다. 나를 위해서 낯선 사람에게 침을 뱉을 수 있는 남자가 또 어디있을까 싶다. 그래도 존경하는 남자와의 결혼생활을 꿈꾸던 내가 어쩌다.


나는 다시 만날 일 없는 사람들에게 참은 화를 가족들에게 풀어놓느니 교양없이 침을 뱉는 남편이 낫다, 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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