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간을 되돌리는 버튼은 사람이다. 그 시작은 오타와에서 알고 지내던 언니네 가족이었다.
우리는 오타와에서 처음 만났다. 나는 첫째를 임신 중이었고 언니의 딸은 걸음마를 배우는 중이었다. 내 뱃 속의 아이가 태어나고 언니의 딸이 작은 어른처럼 행동하기 시작할 무렵 우리는 같이 보내는 짧은 시간에도 즐거워했다.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거리를 두고 살면서 자주 만나지 않았지만 마음이 든든했던 이유는 잘 모르겠다. 늘 어제같은 오늘, 내일을 살거라 착각한 게으른 마음 때문이었을까.
언니네 가족을 2년만에 만난 건지 3년만에 만난 건지 아니면 어제 만났다가 오늘 다시 만난 건지 헷갈리면 우리 아이들을 한 번 둘러보면 되었다. 말 없이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 앉아 손만 잡았다 놨다 하던 아이들은 방에 들어가서 시시덕거리고 언니네 둘째는 우리집 거실을 기어다니는 나의 둘째 사이로 걸음마 연습을 했다. 어른들은 처음 만났을 때와 거의 변함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주름살의 설명없이도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는 지는 아이들이 보여준다. 이번에도 우리는 짧은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즐거웠다.
시간 약속을 하고 누군가를 밖에서 만나는 일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딸아이를 유치원으로 쫓아내듯 보내고 뉴욕을 여행중인 대학동기를 서둘러 만나러 갔다. 우리는 스무살에 처음 만났고 마지막으로 만난 건 10년 전의 일이다.
내가 안고 있는 둘째가 아니었더라면 우리는 세월을 실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주 신기한 물건을 바라보듯 나와 내 친구는 서로를 마주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우리는 스무 살 여자애들처럼 연애는 어려운 일이라며 입맛을 다셨다.
나는 연애가 어려워서 일찍 결혼을 하고 아이엄마가 되었다. 친구는 어려운 연애를 이어나가는 틈틈이 일을 해서 좋은 직장과 나이보다 높은 직급을 얻었다. 연애가 어려워질수록 우리는 생산적인 사람이 되는 모양이었다.
나는 이제 더이상 가지 않은 길을 후회하고 상상하며 스스로를 헤치지 않기로 했다. 내가 가지 않은 길에는 친구들이 있다. 내가 차마 가지 못한 곳에 있고 내가 갈 수 없는 곳으로 가는 친구들에게 보내는 안부인사 한 번이면 나는 어디에나 어느 시간 속에나 존재한다. 여기, 지금의 나는 너의 어제를 오늘로 내일까지 보여준다.
친구에게 얘기하진 않았지만 우리가 함께 찍은 사진은 볼수록 합성사진 같고 나는 이대로 우리가 헤어지면 내일 강의실에서 만날 수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가 다니던 대학 캠퍼스가 다른 데로 옮겨져 이제는 사라졌다는 사실은 악몽이다.
나를 향해 유치원 복도에서 걸어오는 딸아이와 아주 오랜 시간,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던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시간을 움직이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