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호텔방에서 밤 10시까지 노트북을 열고 일을 했다. 시아버지는 맥주를 사서 남편을 기다리다가 맥주의 유혹에 넘어가 혼자 맥주 두 병을 끝냈다. 일을 마친 남편이 딸아이와 옆방으로 넘어가고 나는 침대 위에 가로로 누워서 졸린 둘째를 토닥여주었다.
옆방에서 남편과 시아버지의 목소리가 웅얼웅얼 들려온다. 남편은 회사일에 대해서 열을 올려 이야기하고 시아버지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한다.
나는 더이상 내가 남편 일상의 고민거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이가 아무것도 아니었을 때는 내가 남편에게 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고민스러웠겠지. 마지막으로 남편이 나에 대해 다른 사람 앞에서 이야기 해 본 게 언제인지 물어보고 싶다. 내가 아이를 잘 낳는다는 말 빼고.
누구도 나를 고민하지 않는 세상에서 나의 고민은 늘어만 간다. 나는 너에게 늘 조금은 불편하게 신경쓰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자기 몫의 맥주 두 병을 마시고 딸아이와 돌아온 남편이 기분이 좋은 지 애교를 부린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고. 딸아이는 침대에 눕자마자 잠들었다.
자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지금껏 잘 살아온 이유는 남편이 나를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네가 나에 대해서 할 말이 없는 건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넘어간다는 뜻일지도 모르니까.
한 시간 뒤에 우리는 크루즈 배를 타러 간다. 9일 동안 인터넷 없이 지내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