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류연재

DAY 1 Florida, Tampa 그만 좀 해

캐러비안 크루즈

by 준혜이

우리는 금요일 오후, 플로리다 Tampa에 도착해서 공항 근처 호텔에서 하루 자고 토요일 아침에 셔틀버스를 타고 Port Tampa Bay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만났을 때부터 시아버지에게 나는 우리 짐이 많다는 이야기를 다섯번 쯤 들은 것 같다. 그게 내 잘못도 아닌데 나는 둘째 기저귀를 많이 가져왔어요, 남편 출장짐까지 있어요, 라고 설명한다. 호텔 앞에서 Port Tampa Bay행 셔틀버스를 탈 때도 시아버지는 짐이 많다는 말을 산 정상에서 야호를 외치듯 자연스럽게 했다. 나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우리 가방이 눈 앞에서 한 번 터져야 우리가 여행 중에도 어떻게 살아야하는 지 말 없이 이해받을 수 있을까.


언제든지 화낼 준비가 된 사람처럼 남편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셔틀버스가 약속된 시간보다 늦게 도착했다. 셔틀버스를 타는 많은 사람들, 사람들보다 더 많은 가방들이 버스에 실릴 때까지 지루하게 버스 안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렸 타기를 반복했다. 버스 기사가 출발하려고 하자 승객 한 사람이 모자랐고 없어진 사람이 제 자리에 돌아와 앉았더니 버스 기사가 나가고 다.


우리가 크루즈 탑승 수속을 할 때 다른 사람들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크루즈 직원들이 내가 가지고 있는 TD 비자가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한 순간도 잊은 적 없지만 이렇게 내가 아주 멀리서 왔다는 걸 다른 사람들이 확인시켜주면 나는 몸이 움츠러든다.


배가 고픈 우리는 방에 가방을 내려놓고 점심을 먹었다. 딸아이가 식탁 위의 물컵을 넘어뜨렸다. 딸아이의 옷이 들어있는 가방은 아직 배 밖에 있는데. 내가 들고다니는 배낭에는 둘째의 기저귀와 옷만 있다. 생각해보면 딸아이가 혼자 밥을 먹고 물을 마시니까 옷을 더럽히고 적시는 일이 생기는 게 당연하다. 방으로 돌아와 딸아이에게 둘째의 윗도리와 바지를 입혔더니 바지가 꽉 낀다고 벗겨달라고 난리를 친다. 둘째의 윗도리는 딸아이에게 잘 어울렸다.


다행히 안전교육이 시작되기 전에 가방이 우리 방문 앞으로 배달되어 딸아이가 속옷바람으로 방 밖을 나서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크루즈 승객 모두 갑판에 모여 구명조끼 착용법을 배웠다. 실제로 사이렌이 울리면 우리는 침착하게 아이들을 챙겨서 잘 대피할 수 있을까. 줄 맞춰 서서 안전교육을 받는 게 귀찮고 싫은 남편이 짜증을 내서 나는 한숨을 쉬었다. 언제나 어디서나 나는 곁에 있는 사람의 기분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배가 항구를 떠난 지 얼마되지 않아 두통이 왔다. 나는 배멀미가 심해지기 전에 약을 먹었다. 시부모님이 쓰는 방은 창문이 없고 크루즈 배 한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어서 그런지 그 방에 가면 멀미증상이 나아지는 기분이었다.


딸아이를 어린이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크루즈 직원이 크루즈 안에 타고 있는 아이들 이름과 나이가 적힌 리스트를 가지고 있었는데 우리 둘째가 배 안에서 가장 어린 아이였다.


저녁 식사 후에 로비에서 짦은 공연이 있었다.


내가 둘째 기저귀를 갈아주러 간 사이 딸아이가 무대 앞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과 춤을 추었다고 한다.


나는 카지노에서 5불을 날렸다.


인터넷 없이 9일을 버티는 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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