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러비안 크루즈
다음 섬에 도착하기까지 크루즈는 이틀동안 멈추지 않고 바다를 달린다. 아침을 먹고 딸아이를 크루즈 안의 어린이집에 맡겼다. 딸아이 또래의 아이들이 그 곳에 거의 다 모여있었다.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있을 때 즐겁다. 잘 따라오지 않는다고 딸아이를 혼내가면서 크루즈 이곳저곳을 구경하는 건 서로에게 피곤한 일이다.
크루즈 공연장에서는 쇼핑가이드의 프리젠테이션이 있었다. 딸아이가 없으니 심심한 둘째를 안은 나, 남편, 그리고 시부모님은 공연장에 앉아서 시간이나 때우기로 했다. 그나저나 쇼핑 프리젠테이션이라니. 배가 섬에 머무는 시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효율적인 쇼핑을 위해서 꼭 필요한 이벤트이긴 하다. 나는 캐러비안 섬에서 가장 인기있는 쇼핑 품목이 다이아몬드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프리젠테이션이 진행되는 동안 시부모님은 낮잠을 주무셨고 나는 남편에게 보석 쇼핑이 무슨 심각한 일이라도 되는 듯 다루는 프리젠테이션에 대해서 비아냥거렸다. 아름다운 섬을 보석 시장으로 만들 생각은 누가 한 것일까. 나는 평생 귀도 뚫지 않고 보석에 마음 주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 남편에게 받은 결혼 반지 하나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쳐 거의 온 세상을 여행한 뒤 내게로 왔기 때문에 나는 충분하다.
보석 다음 품목은 시계였다. 어떤 시계는 조립하는데만 9개월이 걸린다면서 쇼핑가이드는 그 시계의 품질과 가치를 치켜세웠다. 그 시계는 장인 정신이 깃든 예술품이고 누군가의 9개월을 순간의 지불 능력으로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돈의 달인이다.
어린이집에서 나온 딸아이가 남편이랑 뛰어놀다가 바지에 오줌을 지렸다. 저녁식사 중에는 둘째가 4일 만에 똥을 누느라 얼굴이 빨개지도록 온 몸에 힘을 주고 소리까지 질렀다. 아이들의 똥과 오줌에서 해방되는 날이 오기는 하는 걸까. 그래도 둘째의 기저귀를 갈면서 나는 노래를 불렀다.
저녁 공연을 보다가 나는 어깨가 아파서 둘째와 방으로 들어왔다. 둘째를 아기띠고 안고 다니는 데에 한계가 온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다. 오랜만에 침대에서 자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딸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공연을 끝까지 재미있게 보았고 남편은 포커 토너먼트에 참가했다가 150불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