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러비안 크루즈
아무것도 하기 싫은 건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피곤하다고 해도 될 걸 나는 아침부터 신경질을 부렸다.
크루즈 식당 음식에 질리면 먹으려고 가져온 컵라면을 식구들 중에서 내가 제일 먼저 꺼내먹기 시작했다.
식구들과 식탁에 마주앉아 도란도란 하루 세 끼 먹는 게 나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둘째는 시시때때로 의자에서 일어나 식탁에 기어오르려고 했고 딸아이는 가만히 앉아서 밥 먹기가 지겨워 몸을 비비꼬았다.
사실 나도 혼자 대충 차려먹는 생활을 하다가 매 끼니 제대로 챙겨먹는 게 괴로웠다. 그래서 나는 맛있게 샐러드를, 고기를, 아무거나 눈 앞에 있는 음식이라면 모조리 다 먹고 있는 남편에게 콜레스테롤 수치를 들먹이며 식사 분위기를 끌어내렸다. 그렇게 내 몸무게가 무슨 벼슬인 것처럼 재수없게 굴고 있는데 내 입을 틀어막을 디저트가 나왔다. 그 누구도 단 것을 많이 먹는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는다. 나는 말랐으니까. 모두가 나를 참아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루즈 안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항상 무언가를 마시거나 먹고 있다. 눈으로 음식을 먹는다는 말, 자식 입에 음식 들어가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는 말이 헛소리가 아니었다. 나는 음식을,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을 보는 것이 더이상 즐겁지 않았다. 애초부터 공공장소에서 채워지는 인간의 욕구에 구경꾼은 필요없다.
딸아이가 크루즈 어린이집에서 사귄 친구는 크루즈에서 하나뿐인 방을 쓰고 있는 아이였다. 나이 들고 머리가 벗겨진 백인 남자, 내 나이쯤 되어보이는 중국여자와 백프로 동양 여자아이가 한 가족이라는 것만으로도 특별해보였는데.
딸아이의 친구가 자신의 집으로 딸아이를 초대했다. 밤 늦은 시간이었지만 신난 아이들을 말릴 용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크루즈 선장의 옆방, 넓은 발코니, 침실 따로 거실에는 피아노가, 화장실이 두 개, 큰 화장실에는 사우나까지 있었다. 딸아이 친구가 자신의 방이 아닌 자신의 집에 놀러오라고 한 이유를 알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겨우 이어가다가 나는 딸아이가 맥앤 치즈만 먹어서 걱정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딸아이 친구의 새아빠처럼 보이는 아빠가 자신의 아이는 바나나와 아이스크림만 먹고 있다며 우리를 부러워했다.
딸아이 친구 집에서 우리 방으로 돌아와 방문을 열자마자 남편과 나는 큰소리로 웃었다. 우리는 누군가의 화장실만한 곳에서 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