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류연재

귀찮아서 괜찮은 척

by 준혜이

일요일 저녁, 응급실로 가기 전에 남편은 의료보험 회사에 전화를 했다. 우리가 가고 있는 병원이 우리가 갖고 있는 의료보험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병원인지 확실하게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의료보험이 있는데도 아무 병원에나 갈 수 없다는 게 불편하다. 우리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병원을 그냥 지나쳐가야하는 게 안타까웠다. 나는 이런 상황이 하나도 괜찮지 않았지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하고 행동했다. 내가 괜찮은 척 하지 않으면 귀찮은 일이 벌어질 게 분명하니까 말이다. 나는 울고 싶을 때 다른 사람을 웃긴다.


매일매일 똑같은 일상에 할 말이 없어 자주 연락하지 않는 친정과 시댁에 둘째가 다쳤지만 괜찮다는 소식을 전했다.


시어머니는 남편이 어렸을 때 동생을 다치게하고 무척 미안해했다면서 딸아이가 많이 놀랐을테니 잘 달래주라고 했다. 나는 딸아이를 겨우 야단치지 않았다고 대답하고 딸아이는 괜찮아보인다고 덧붙였다. 시어머니는 남편도 그 때 야단맞지 않았지만 심하게 죄책감을 느꼈다고 우리 딸아이도 그럴까봐 걱정했다.


남편과 시어머니의 말과 기억은 달랐다. 어떤 것이 진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같은 일을 겪은 사람들의 입장이 같지 않으니까. 내 입 밖으로 나간 말과 타인의 시선 앞에 전시하는 나의 몸짓과 표정은 더이상 내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친정엄마는 아주 오래 전 내 동생이 다친 걸 내 탓이라 뒤집어 씌웠던 적이 있다면서 웃는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월요일 아침에 출장을 떠나야하는 남편은 비행기표를 바꿔 저녁에 갔다. 월요일이 쉬는 날이라 딸아이가 유치원에 가지 않았는데 남편이 같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병원은 문을 닫았는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둘째는 정형외과 의사 진료를 이번 주 안으로 받아야 한다.


걷던 둘째가 얌전히 한 자리에 앉아서 놀거나 느릿느릿 기어다니니까 집안 일이 수월하다. 그래도 집안꼴은 엉망이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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