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류연재

너를 위로할 수가 없어

Fargo 에서

by 준혜이

요즘 내가 즐겨쓰는 스트레스 해소법은 오래된 친구가 알려준 '물건 이야기' 라는 책을 읽는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가게에서 쉽게 사는 물건들이 처음 만들어지고 우리 손에 들어와서 쓰인 뒤 버려지기까지 지구를 어떻게 오염시키는지에 관한 책이다. 책을 읽기 시작하고 얼마지나지 않아 나의 고민들은 하찮아졌고 내가 마시는 깨끗한 물 한 컵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내가 누리는 것에 대한 감사를 잊고 짜증이 나서 어쩔 줄 모를 때 나는 다시 책을 펼쳐들고 지구를 위해 세제를 거의 넣지 않고 세탁기를 찬물로 돌린다.


주말에만 보던 남편을 평일내내 보는 게 나는 조금 어색하다. 아이들은 저녁마다 호텔방으로 돌아오는 남편을 아주 반갑게 맞이한다. 특히 둘째가 소리까지 질러가면서 좋아하는데 저 쪼끄만게 뭘 안다고 저럴까 싶기도 하다.


하루종일 아이들 떠드는 소리에 시달렸지만 나는 퇴근하고도 머릿속으로 회사일을 생각하는 남편의 침묵이 달갑지 않다. 일을 대충하는게 완벽하게 하는 것보다 어렵다니 나는 이해가 안되지만 남편이 생각하는 완벽이 진짜 완벽하기를 바란다.


저녁을 먹고 남편은 인형뽑기를 했다. 기계가 고장나서 5불을 넣으면 40번의 기회가 주어진다. 원래는 10번이어야 한다. 인형이 잡히지 않을 때마다 아빠는 포기 안하지, 를 외치는 남편을 아이들이 좋아한다. 남편은 인형 네 개를 뽑아서 딸아이에게 안겨주었다.


방으로 돌아와 딸아이가 인형을 숨기면 남편이 찾는 놀이를 했다. 그러다 남편이 침대에 누워 아주 깊은 침묵에 빠져버렸다. 나는 남편을 구해서 딸아이에게 바쳐야한다. 무표정하게 벽을 바라보는 남편 겨드랑이에 내 두 손을 넣어 간지럼을 태웠다. 미친놈처럼 웃는 남편을 보고 둘째가 자지러지게 울었다.


오늘 나는 지구에 얼마나 많은 해를 끼쳤을까. 사는 게 뭔지, 도대체 누가 누구를 위로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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