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은 '집에 오는 길은 때론 너무 길어', 노래했지만 나에게는 집을 떠나는 길이 집에 오는 길보다 길었다. 나의 다짐도 소용없이 늘어난 짐과 집에 도착하면 해야할 일들이 내 등을 집 쪽으로 떠민다. 나를 생활로 잡아들인다.
공항 곳곳의 모니터에는 우리가 가본 적 없는 여러 도시의 이름이 박혀있다. 이대로 우리가 집이 아닌 곳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좋겠다.
유럽 도시의 이름은 모두 하나같이 나를 설레게 한다. 발 길은 집으로 향해 있지만 내 마음은 주술처럼 외워보는 코펜하겐, 제네바, 암스테르담으로 간다.
남편이 스마트폰을 한참 보더니 우리가 가진 마일리지로 이틀 뒤 암스테르담으로 떠나는 티켓으로 바꿀 수 있다는 얘기를 했다. 어차피 월요일이면 자신은 다시 출장지로 떠날테니 내가 할 수 있으면 애들을 데리고 암스테르담에 가서 일주일 있다가 오라고도 했다.
집에 있으면 집에만 있고 싶고 여행 끝에 다시 여행이 있기를 바라는 관성의 법칙이 나를 지배한다.
월요일, 남편은 어김없이 출장을 떠났고 유치원에 다녀온 딸아이가 가져온 생활기록카드에는 결석일수 20 이 적혀있었다. 딸아이의 빈 자리를 유치원 선생님이 세고 있다.
말로만 암스테르담에 다녀오느라 집에 돌아오는 길이 바다를 건널 꿈을 꾸는 달팽이처럼 길어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