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나에게 플레이도를 한덩이 주고서는 작은 별을 아주 많이 만들어 달라고 했다. 지저분한 식탁 위를 들여다보니 딸아이는 성조기를 만드는 중이었다. 내가 귀찮은 티를 너무 냈는지 딸아이는 플레이도 틀로 조용히 혼자 별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완성된 깃발을 들고 딸아이는 미국 국가를 부르면서 거실을 돌아다녔다. 딸아이가 "Mom, it's our country!" 라고 외칠 때 내 기분은 이상했다. 딸아이에게 '너는 캐나다에서 태어났어', 말하지도 '넌 한국 사람이야', 라고 하지도 못하고 나는 그저 딸아이를 바라만 보았다.
나라의 의미가 딸아이에게 예쁜 깃발, 부르고 싶은 노래로 자리잡고 있다. 나에게 국가는 불편한 서류일 뿐이지만 말이다.
딸아이의 출생증명서에 인쇄된 이국적인 이름을 읽던 날, 나는 평생 좁혀지지 않을 우리 사이의 거리를 알아보았다. 너는 나의 외국인. 그래서 나는 딸아이가 자라는 게 아쉽고 두렵다. 이방인이 인도하는 세계에서 벗어나, 나를 해석할 딸아이를 마주하기 부끄럽다.
딸아이가 이틀 째 미국 국가를 신나게 부르며 거실을 뛰어다닌다. 이번에 나는 그냥 넘어가지 않고 너는 캐나다에서 태어난 한국 사람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딸아이가 우리는 지금 여기 살고 있다고 대답한다. 과거와 미래가 방해하지 않는 한 딸아이는 미국사람, 나의 외국인. 딸아이의 말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