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D.C.
동물원 이곳저곳을 원없이 돌아다닌 우리는 배가 고팠다. 핫도그나 피자를 딸아이가 잘 먹으면 우리는 대충 동물원에서 끼니를 때울 수 있지만 딸아이는 편식이 심하다. 집에 있을 때는 편식하는 딸아이 밥 차려주기가 쉬워서 좋다. 하지만 밖으로 나오면 딸아이가 먹는 음식이 있는 식당과 남편과 내가 가고 싶은 식당이 맞아 떨어져야 평화로운 식사를 할 수 있다. 나는 딸아이의 식습관을 일찍 바로잡지 못한 것을 후회하다가도 집에 돌아가면 딸아이를 위해 계란후라이만 만든다.
우리는 또 일식당에 갔다. 아보카도롤이 없는 덮밥집이었다. 덮밥 냄새를 맡은 이상 우리는 덮밥 말고 다른 음식을 먹고 싶지 않았고 딸아이는 배가 너무 고프다며 식당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맥도날드 해피밀은 이름을 진짜 잘 지은 것 같다.
밥과 밥 위에 얹어진 음식을 잘 비벼먹어야 되는 거냐는 남편의 질문에 나는 그냥 대충 먹으라고 대답했다. 와사비가 맵다면서 여태까지 내가 본 남편 얼굴 중에서 가장 못생긴 얼굴로 남편이 거의 울었다. 나중에 남편의 덮밥 사진을 보고 나는 남편에게 이 많은 와사비를 밥이랑 다 섞었냐고, 미쳤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식당에서 본 남편의 못생긴 얼굴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식당 입구 쪽에 앉아있던 커플이 손을 잡고 밥을 먹고 있는 걸 보았다고 남편에게 얘기했다. 여자가 왼손잡이여서 가능한 일이었다. 왼손잡이인 남편이 우리도 손 잡고 밥 먹을 수 있었다면서 너무 과장되게 아쉬워했다. 나는 남편에게 딸 시중이나 잘 들으라고 말하고 우리의 연애시절을 떠올려봤다. 우리가 서로에게 가까워지기 위해 고민한 예의바른 노력들이 그 때는 가능성이기만 했던 우리 아이들이 부린 마법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나는 식당에서 남편의 손을 붙잡고 밥 먹을 생각은 없다.
점심을 다 먹고 Library of Congress에 갔다. 딸아이가 호텔에 가서 비디오를 보고 싶다고 칭얼거렸다. 나는 더 오랜 시간 도서관을 기웃거리고 싶었지만 나중에 다시 오면 된다는 하나마나한 말을 하면서 도서관 밖으로 나왔다.
박물관을 한 군데도 못가서 우리가 정말 나중에 여기 또 올 수도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고등학생들이 단체로 다니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우리 애들도 저렇게 커버리고 말거라는 생각에 나는 심란했다. 특히 고등학생이면서 초등학생처럼 행동하는 남자아이들을 보았을 때.
호텔에서 빈둥거리다 중국음식을 호텔로 배달시켜 먹었다. 딸아이는 소스도 없는 맨 국수가 저녁이었다.
편식은 내가 딸아이에게 물려준 위대한 유산이라는 걸 가족들은 다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