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류연재

서류 더미

by 준혜이

나는 한국에서 살지 않는 한국인이다. 캐나다에서 사는 동안 나는 CAQ와 캐나다 학생비자가 있어야 했다. 결혼을 하고 캐나다 영주권을 신청했지만 제 때 나오지 않았다. 우리가 결혼을 하고도 남편은 오타와에서 회사를, 나는 몬트리올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던 탓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이민국에서는 아무런 설명없이 기다리라고만 했다. 그래서 나는 대학 졸업자에게 발급해주는 3년짜리 캐나다 워킹 비자로 영주권이 나올 때까지 버텼다.


미국에서 살기 위해 나는 처음에는 F2비자, 작년에 새로 TD 비자를 발급받았다.


캐나다 영주권 만료 기간이 다가온다. 영주권을 받은 지 1년이 조금 넘어 미국으로 이사해서 나는 캐나다 시민권 신청 자격이 없다. 요즘 나는 영주권을 연장하기 위해 한 장, 두 장 서류를 모으고 있다. 캐나다 밖에서 캐나다 시민권자와 같이 살고 있다는 증명서류가 필요하다. 남편의 대학원졸업장, 재직증명서, 둘째 출생증명서도 혹시 도움이 될까해서 첨부한다. 내 존재는 남편의 그림자 속에서만 합법이다. 남편은 나를 위해서 늘 빛이 드는 곳에 서 있어야 한다.


캐나다에서 학생 비자를 연장할 때는 통장 잔고서류까지요했다. 돈 부쳤어, 라는 엄마의 목소리를 신호삼아 다급하게 서류를 모으던 나랑 내 동생 생각이 난다. 비자 서류에서 벗어나, 한국에서 동생은 존재의 자율성을 찾았을까. 아니면 쫓겨날 곳이 없어 사는 게 시시할까.


둘째가 유모차 속에서 자고 딸아이가 태권도를 배우는 동안 내 증명사진을 찍었다. 더 이상 이사 다니고 싶지 않은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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