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류연재

집에 가기 싫은데

워싱턴 D.C.

by 준혜이

일요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점을 치듯 우리를 살펴보니 자연사 박물관에 갈 상태가 아니었다. 우리는 전날 밤, 잠든 애 둘을 침대에서 떨어지지 않게 잘 눕혀놓고 홈리스에 대한 다큐멘터리 Without a Home 을 봤다. 그러고도 잠이 오지 않아 일반인들이 죄수가 되어 (감옥에 있는 죄수들과 교도관들은 이 사람들이 죄수인 줄 안다. 무하마드 알리의 딸도 나온다.) 감옥 생활을 하는 리얼리티쇼 60 Days in 까지 보고 잤다. 집이 없는 사람들도, 죄 없이 감옥에 제 발로 걸어들어간 사람들도 진짜같지 않았다.


써머타임 때문에 한 시간이 사라졌다.


호기심이 많아진 둘째 때문에도 밖에서 밥 먹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그래도 나는 둘째가 얼른 자라서 어린이집에 다닐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딸아이가 주문한 맥앤치즈 위에 과자가루가 뿌려져 있어서 딸아이는 인상을 쓰고 맥앤치즈를 반만 먹었다.


이 날 워싱턴에서는 St. Patrick's day 퍼레이드가 있었다. 우리는 3시에 기차를 타야해서 1시 반까지만 여기 있다가 기차역으로 가기로 했다.


아이들에게는 장난감보다 뛰어다닐 수 있는 맨 땅이 필요하다. 장난감 살 돈을 모아 땅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집 가까이 괜찮은 공원 하나 없다는 사실이 싫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를 처음 보자마자 반한 나는, 아이들이 자란다는 당연한 사실을 잊고 말았던 것 같다. 엄마로 살면서 오랜 시간 가꿔 온 나의 자아와 정체성을 포기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중요한 순간마다 나의 존재는 이기적으로 나타난다. 그런 결정을 내리는 내 생각이 짧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게 결코 실망스럽지만은 않다. 아이들이 어릴 때 철없이 굴다가 고쳐나가는게 나중에 다 큰 아이들한테 가슴아프게 ㅋㅋ 지적받으면서 고치는 것보다 낫다.


퍼레이드는 볼 만 했다. 딸아이가 무척 좋아해서 우리는 지루했지만 웃었다.



우리는 체크아웃하고 호텔에 맡겨 둔 가방과 유모차를 찾아 우버를 타고 기차역으로 간다. 집에 가기 싫었다.


우버 기사는 스마트폰에 뜬 남편 이름을 보고 손님이 프랑스인 일 거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남편이 자신의 차에 타려고 다가왔을 때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우버기사에게 남편이 캐나다 몬트리올 출신이라는 이야기를 할 때 우리가 돌아다닌 모든 도시들이 의미없어졌다. 몬트리올에는 처음 만나 서로 어색했던 우리가 있기 때문이다.


엘레베이터 고장으로 남편 혼자 푸드코트에 내려가 점심을 사왔다. 아이들과 있으면 이렇게 종종 원시시대를 경험하게 된다. 동굴 속에서 여자와 아이들이 사냥에 성공한 남자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은 한 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동굴 밖에서 친구를 사귀어 온다.


집에 가면 자잘하게 할 일들이 많다. 그런 거 신경쓰고 싶지 않아서 우리가 요즘 자꾸 밖으로 돌아다닌다. 우리 곁으로 폭주하는 일상의 소리가 들린다.


집집집집집집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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