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류연재

안녕, 산타

by 준혜이

아끼던 머그잔이 깨진 지 일 년이 넘었다. 좋았던 것이 나빠지고 끝내 사라지는 건 왜 이렇게 순식간인지. 남김없이 떠난 수많은 것들 뒤에서 내 마음은 느리다.


재작년에 시카고에서 이삿짐을 받아 머그잔을 꺼냈을 때 남편은 컵이 깨질까봐 겁이 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딸아이한테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컵이니까 만지지 말라고 경고까지했다. 나는 남편에게 그러다 남편이 그 머그잔을 깨고 말 것이라는 예언을 했다. 우리는 머그잔을 늘 눈에 띄는 곳에 두고 경계했다.


2014년 11월에는 예정일이 지났는데도 태어나지 않는 둘째 때문에 온 가족이 예민해져있었다. 일주일 휴가가 거의 끝나가는 남편은 출장을 앞두고 있었고 산후조리를 위해 시어머니가 와계시는 늘어갈수록 시아버지가 혼자 계시는 시간도 길어졌다.


딸아이와 방에서 자고 있는데 거실에서 큰소리가 났다. 남편이 방으로 뛰어들어와 자신이 산타컵을 깨뜨렸다며 울부짖었다. 딸아이는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건데 하면서 울었다. 나는 두 사람을 진정시키느라 슬프지도 못했다. 남편은 엉덩이에 불 붙은 사람처럼 어쩔 줄 몰라하면서 거실과 방을 왔다갔다했다. 괜찮다는 내 거짓말이 소용없어서 나는 화가 났다.


네가 지금 나보다 더 슬퍼? 그만 하고 나가. 애 울잖아.


그 날 샤워를 하면서 나는 조인성처럼 울었다.


머그잔이 깨지고 얼마지나지 않아 둘째가 태어났다. 토요일 새벽에 태어난 둘째 덕분에 딸아이가 나랑 떨어져있는 시간이 짧았다.


둘째와 함께하는 일상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지내는 동안에도 나는 인터넷을 뒤져 똑같은 머그잔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제조사에 연락까지 해봤지만 소용없었다. 그래서 나는 긴긴 연애에 실패하고 막 나가기로 작정한 여자처럼 인터넷으로 컵 열 개를 사들였다. 내가 가지고 있던 머그잔과 모양은 같지만 그림이 다른 머그잔도 하나 샀다. 예전같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도 차마 같은 모양의 머그잔을 하나 이상 살 수는 없었다.


나는 깨진 머그잔을 보고 싶지 않아서 남편에게 내 눈에 띄지 않게 치우라고 부탁했다. 내 기억 속에 산타할아버지의 깨진 미소는 없다.


사랑하는 사람들 마음 아 외면하고 싶은 모습으로 마지막을 맞이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다. 우리가 살아낸 세월에 매일매일이 작별인사라 해도 우리에게 마지막은 갑자기, 순식간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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