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류연재

이사

by 준혜이

윗집 사람들이 토요일에 이사를 나갔다. 트럭 세울 곳이 마땅치 않아서 아파트 건너편 주차장으로 이삿짐 센터 아저씨들이 무단횡단을 하면서 짐을 옮겼다. 이사하기 전에 경찰한테 얘기하면 아파트 옆문 길 가로수에 주차금지 표지를 올려주는데 윗집 사람들은 몰랐나보다. 윗집 남자가 뒤늦게 경찰을 불렀지만 달라진 건 없다.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테고 위험하기까지하니 이삿짐센터 아저씨들은 이사비용을 추가로 청구할 것이다.


금요일 저녁에 위에서 들리는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나는 윗집 왜 저래, 하고 짜증을 냈는데 이제야 그 소음이 이해된다. 층간소음의 절정은 이사라는 것도. 조용하고 흔적을 남기지 않는 시작과 끝이 뭐가 있을까 마음속으로 찾아보았지만 그 시작과 끝에 나만 없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6월 말에 이사를 할 예정이다. 아직 이사갈 동네를 결정하지 못했지만 이곳에서 이사나가고 싶은 우리의 마음만은 분명하다. 그래도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여기서 1년을 더 살아야 할 수도 있으니까 아파트 관리실에는 아직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떠나고 싶은 우리의 마음이 몸처럼 머물 공간이 필요하다면 우리가 이렇게 쉽게 그 마음을 무시할 준비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네모는 진리, 동그라미는 럭셔리. 일년에 한 번 이삿짐을 싸고 풀면서 나는 네모난 것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옛날 사람들이 지구를 네모라고 생각한 것,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 사람 머리가 네모가 아닌 것을 생각하면서 나는 이번 이사때는 박스가 몇 개나 필요할 지 집안 살림들을 째려본다. 내 머리는 진리가 아니라 럭셔리. 그렇게 고생하고도 살림을 늘리고 말았다.


아침 저녁으로 들리던 윗집 여자의 하이힐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딸아이가 큰소리로 노래해도 나는 말리지 않는다. 우리 위에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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