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집에서 하루종일 혼자 할 수 있는 모든 놀이를 다 끝내도 잘 시간은 멀었다. 나는 딸아이와 같이 놀아주기는 귀찮고, 아이패드를 마음껏 보라고 할 수도 없어서 괴롭다. 둘째는 나에게 별로 요구하는 것 없이 가구처럼 집안의 배경으로 하루를 보내지만 둘째가 돌아다닌 자리는 나중에 꼭 걸레질을 하거나 청소기를 돌려야한다.
아이들이 한 눈에 들어오는 쇼파 자리에 앉아 아이들을 가끔 흘깃거리면서 나는 줌파 라히리의 저지대를 읽는다. 나는 이 책을 개미처럼 거의 2주 동안 읽고 있다. 어느 밤에는 둘째가 잠에서 깨어나 울면 재빨리 달래주려고 벽장 속에 들어가 책을 읽기도 했다. 쉬운 일을 방해받을수록 나는 그 일에 더 집착한다.
지난 주 일요일에도 나는 저지대를 읽고 있었다. 이야기를 읽는 동안 인도 음식의 쿰쿰한 향이 났다. 결국 집으로 인도 음식을 배달시켜 남편과 나눠 먹고 나는 책에서 읽은 이야기를 남편에게 친한 친구의 이야기를 할 때처럼 열심히 해줬다. 그러다 가족이나 친구가 소설 속 주인공처럼 슬픈 일을 겪고 있다면 내 앞에서 입을 굳게 다물고 아무 일 없는 척 해주기를 내가 바라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것과 사랑하지 않는 것, 진짜와 가짜, 모든 것과 아무것도 아닌 것 사이에서 나는 좋은 사람이, 나쁜 사람이 되거나 아예 사람이 아니기를 선택할 수도 있다.
아이들이 아픈 동안 나는 냉장고 속에 남아있는 배달 음식으로 끼니마다 배부르게 잘 챙겨먹었다. 별 의도없이 한 일이 나중에 나에게 이로우면 나는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좋게 끝날 이야기를 기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