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말을 안들어서

by 준혜이

이번 주는 딸아이 유치원 방학이다. 방학 이틀만에 나는 딸아이에게 소리를 질렀다. 딸아이는 울고 둘째는 가만히 서서 우리를 구경한다. 싸움 구경이 재미있다고는 해도 집안 싸움마저 재미있을까. 나는 딸아이와 화해하고 애들 몰래 오예스를 까서 먹는다.


별 것 아닌 하루 일과를 문제없이 해내기 위해서 나는 딸아이에게 우리가 해야할 일을 미리 이야기해준다. 아침밥을 먹고, 나갈 준비를 한 다음 병원에 간다. 이게 오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둘째와 나는 신발만 신으면 언제든지 나갈 수 있었지만 딸아이는 내복 차림으로 밥을 먹고 있었다. 나는 화내지 않고 잘 기다리다가 딸아이가 밥을 먹다 말고 노래를 하고 춤을 추는 바람에 이성을 잃고 말았다.


일주일 넘게 콧물, 기침으로 고생한 둘째는 항생제 처방을 받았다. 아이들과 놀이터에 가려다가 바람이 너무 차고 세서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인상이 찌푸려지도록 집안으로 들이친 눈부신 빛이, 거리에서 우리의 발걸음을 방해하던 바람이 봄이라면 꽃이라도 피우지 말던가. 봄은 이상한 계절이다.


올라프 머리가 달린 사과주스를 마시면서 깡총거리는 딸아이에게 나는 아까 소리질러서 정말 미안하다고 다시 사과했다. 그리고 딸아이에게 혼난 이유를 아냐고 물었다. 딸아이는 자신이 엄마말을 안들어서 혼났다고 대답했다. 맞는 말이었지만 나한테 혼나지 않기 위해서 딸아이가 내 말대로 따르는 걸 나는 원하지 않는다.


신발 벗어줘, 엄마가 신을거야.

저기 있는 개똥 밟아.

양말벗고 맨발로 집까지 뛰어가.

엄마 배고프다 응가 좀 해봐.


딸아이는 나의 모든 말을 듣지 않았지만 혼나지 않았다. 나는 딸아이에게 엄마 말을 듣지 않아서 혼난 게 아니라고하고 엄마 말을 듣고 싶지 않으면 그래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먼저 해야할 일이 있는데 자꾸 딴짓하면 혼날 거라고 경고했다.


내가 소용없는 아이들의 시간과 공간을 그려보면 지금보다 더 너그럽게 아이들을 대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그게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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