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장소에서 본의 아니게 엿듣게 되는 남의 대화는 때로 내 생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긍정하게 도와준다. 우리가 펜실베니아에서 묵었던 호텔 수영장에서 듣게 된 군인의 아내 이야기에 나와 남편은 기립박수를 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여자에게는 3살짜리 딸과 태어난 지 6주된 아들이 있다. 1.9kg에서 6주가 지난 지금에야 3kg이 넘은 아들이 태어나고 3일째 되던 날 군인인 남편은 근무지로 떠났다고 했다. 남편이 올 크리스마스에나 집에 돌아올 거라고 말하면서 어떻게 여자가 울지 않을 수 있는지 나는 궁금했다. 군인의 아내는 수영장에서 처음 만난 여자와 이야기를 하느라 물 속에서 놀고 있는 자신의 딸아이를 보고 있지 않았다. 나와 남편은 그 여자의 얘기를 엿들은 댓가로 수영장 속의 아이들 모두가 우리 자식인 것처럼 지켜보아야 했다.
아빠는 내가 아홉 살 때까지 직업 군인이었다. 아빠가 훈련 때문에 몇 달 씩 집에 들어오지 못하면 엄마는 어린 나를 데리고 외할머니집에 가 있었다고 했다.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나는 한 가족의 부재와 여기저기 떠도는 일상을 훈련받은 셈이다.
선택과 의지, 선택하지 않은 것과 나약함이 빠짐없이 상관하는 우리의 하루하루가 쉽다면 우리는 살아있는 게 아니겠지.
어제 꿈에 본 남자가 어린 시절 내가 좋아한 아파트 경비 군인 장병이었으면 좋겠다. 공항동에서, 영천에서 내 일상의 안전한 표시였던 군복들은 얼마나 심심했길래 나랑 놀아주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