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류연재

모자가 마음에 들어요

by 준혜이

남자들이 나에게 첫 눈에 반할 리 없다는 걸 일찍이 잘 알고 있었지만 나는 길에서 누군가 나를 불러 세우면 지어보이고 싶은 표정이 있었다. 귀엽게 놀란 눈과 예의바르게 미소짓는 입이 포인트인데 머릿속에서의 내 모습과 거울 앞에서의 내 모습은 서로 닮지 않은 자매다. 그래도 나는 혼자 길을 걸을 때마다 기대했다. 누군가 내 발 길을 멈추어 주기를. 그런 일은 아주 오랫동안 일어나지 않았다.


이번 일주일 동안에는 두 번씩이나 고등학교 남학생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내 모자가 마음에 든다면서 어디서 샀는지 가격이 얼마인지 나한테 꼬치꼬치 캐물었다. 남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나는 둘째를 아기띠로 안은 채이거나 둘째가 탄 유모차에 기대어 서 있었다.


잘 생각해보니 작년 여름에는 토론토 야구팀 모자 덕분에 경찰 아저씨랑 말을 섞었다. 내가 야구는 모르고 토론토팀 성적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것만 알아서 경찰 아저씨와 길게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다. 어느 스타벅스에서는 직원이 내 주문을 받으면서 모자에 그려진 단풍잎을 보고 캐나다 국가를 불러준 적도 있다.


모자가 마음에 들어요.

그 모자를 고른 나는 어떠니 ㅋㅋ


길에서 만난 남자에게 전화번호를 가르쳐준 한 번 없이 유부녀가 된 게 비참하다는 나 남편이 내가 여자애처럼 하고 다녀서 그렇다고 위로해주었다. 10년 전 어학원에서 알게 된 베트남 수녀님은 차를 멈추고 연락처를 달라고 한 남자도 있었다는데.


미국 야구팀 모자를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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