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류연재

나쁘게 말해도

by 준혜이

누군가 내가 신은 슬리퍼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내 슬리퍼의 나쁜점부터 얘기해줄 것이다. 나의 경험, 나의 소유에 관해 나는 좋은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 적이 별로 없다. 모든 것이 나를 통해 나쁘게 변해버린다. 나는 심술궂은 할머니가 되고 싶지 않지만 그 자질은 너무나 충분하다.


지난 토요일에 올 여름 이사할 집으로 거의 결심한 집을 다시 보러 갔다. 도로 옆에 아파트 렌트 광고가 많그냥가서 구경이나 해볼까 전화를 하고 새로운 집도 찾아갔는데 우리는 모델 하우스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그 집에 홀리고 말았다.


둘이 동시에 첫 눈에 반해버린 그 집에 살기로 결정하기 전 우리는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주민들에게 집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누가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을 나쁘게 말하겠냐고 남편과 이야기하다가 우버 운전수에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층간소음이 심하다고 욕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사실 이 집은 내 마음에 들었지만 인터넷에 나쁜 리뷰가 많아서 남편에게 보러가자고 하지 않은 집이었다.


이게 정말 사과일까?요시타케 신스케



남편이 남자 두 명 여자 한 명, 나는 여자 한 명에게 말을 걸었다. 동네에 인도 사람이 많고, 살다보면 계단이 불편하고, 에어컨 소리가 조용하진 않지만 동네는 안전하고 아이들과 살기에 아주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한 명이랑 더 얘기해보고 싶었는데 그 사람이 나쁘다고 말하면 여기서 안 살거냐고 남편이 물어봐서 그만뒀다. 잘 생각해보면 탈옥한 신창원을 숨겨준 여자도 있고, 나와 남편이 사귀려는 걸 알고 나한테 밥까지 사주면서 남편을 나쁘게 말한 사람도 있었다.


사무실 아줌마한테 100불짜리 수표를 써주고 남편이 서류 작성을 하는 동안 어떤 부부가 들어와 집을 찾았다. 그들이 원하는 모델의 집이 방금 렌트 됐다는 사무실 아줌마의 말에 여자가 크게 아쉬워했다.


우리가 살고 싶어하는 그 집이 살기 좋다는 말보다 우리와 같은 집을 원하지만 얻지 못하게 된 사람의 탄식이 우리를 불안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우리는 이번 주말에 계약서에 싸인을 할 것이다. 올 여름부터 우리 방바닥을 천장삼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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