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안녕

by 준혜이

딸아이의 친한 친구 C가 5월초에 국방색 태권도띠를 따면서 딸아이와 태권도 수업을 같이 받을 수 없게 되었다. 태권도 세계 속의 계급 차이는 시간이 해결해주지만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다.


우리가 6월 말에 이사하는 걸 잘 알고 있는 딸아이는 5월 31일 밤, 내일이면 6월이 된다고 울었다. 6월 1일 밤에는 이제 계속 6월이라고 울었다. C와 태권도에서 한 달 먼저 헤어진 건 다행이다. 물론 딸아이는 매일 유치원에서 C를 만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C의 엄마에게는 우리 둘째만한 손녀가 있다. 그 사실을 알고 그 여자의 흰머리가 부쩍 눈에 띄어 나는 놀랐다. 나이가 많고, 이미 어른이 된 자식이 있어도 아이를 갖고 싶은 건 어떤 사랑일까. 설마 아이가 먼저 생기고 시작된 사랑은 아니겠지. 나는 그 여자의 인생을 흥미진진하게 상상해본다. 나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결정을 내리면서 이끈 그 여자의 삶에 나는 아들 친구의 엄마로 조용히 지나간다.


C의 아빠는 태권도 수업이 끝나고도 헤어지기 싫어하는 아이들을 위해 우리집 쪽으로 같이 걸어주곤 했다. 이게 한 달이 아니라 몇 년 전의 일처럼 멀게 느껴진다. 딸아이는 친구와 천천히 안녕하고 있지만 나는 그 친구의 부모 느닷없이 작별했다.


내가 노력하면 딸아이와 C는 우리가 이사한 후에도 서로 만나고 친할 수 있다. 비행기로 열 시간 넘게 떨어진 곳, 차로 다섯 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의 친구들이 아직도 변함없이 우리의 친구인 것처럼.


차로 한 시간 떨어진 동네에서는 부모의 게으름이 아이들에게 새로운 친구를 소개하고 서로를 잊으라 충고하겠지. 한 시간을 십 분으로 만들 딸아이의 눈물을 보기 전까지.


유치원에 갈 수 있는 날을 세고 있는 딸아이가 안쓰럽다. 하지만 그 슬픔이 온전히 딸아이의 몫이라는 걸 아는 나는 딸아이를 방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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