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류연재

내 코가 석 자는 아니고

by 준혜이

늘 월요일 새벽 비행기를 타고 출장을 가던 남편이 이번 주에는 월요일 저녁 비행기를 타고 떠났다. 그래서 월요일 아침, 온 가족이 딸아이 유치원 가는 길에 함께했다. 남편은 출근하고 나는 콧물을 흘리고 기침을 하는 둘째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이렇게 내 월요일의 질서가 무너지고 마음이 바쁘다.


유치원에서 나온 딸아이를 데리고 둘째는 유모차에 태워서 남편 회사 앞으로 갔다. 유치원이 끝나면 집에서 항상 유투브를 보던 딸아이는 라이트레일을 기다리면서 짜증을 냈다. 아빠는 좋지만 딸아이에게도 자신만의 생활방식이 있는 것이다. 나는 내 스마트폰을 딸아이에게 빌려주었다.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어떤 여자가 진짜 뱀처럼 생긴 케이크를 만들고 있었다. 남편은 그 여자가 만든 케이크를 살 수 있는지 알아본 적이 있다. 아쉽게도 그 여자는 케이크는 팔지 않고 자신이 케이크를 만드는 비디오만 제작하고 있었다. 나는 딸아이가 그 여자를 실제로 만나면 얼마나 좋아할지 상상해봤다. 그 여자도 캐나다 사람이라면서 딸아이가 많이 좋아한다.


나는 아이들과 남편을 기다렸다. 누군가 나를 기다리는 일은 이제 별로 없다. 딸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오기를, 둘째의 낮잠시간을, 아이들의 긴 밤잠을 나는 매일 기다린다. 나를 혼자 기다리는 어둠을 맞이하기 위해서.


우리는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라이트레일에는 퇴근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다리가 아프다고 딸아이가 유모차에 앉은 둘째를 깔고 앉자 둘째가 신경질을 부렸다. 우리를 구경하는 사람들 중에 딸아이에게 자리를 양보해 줄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렸지만 그들이 힘들게 퇴근하고 있다는 걸 나는 안다. 젊다못해 어린 내 딸은 집에 도착하기 두 정거장 전, 빈 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


라이트레일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나는 유모차를 끌면서 엘레베이터 쪽으로 걸었다. 라이트레일 역은 순식간에 나와 아이들 차지가 되었다. 아이가 없으면 경험할 수 없 느리고 긴 이동이 만든 풍경이다. 그런데 엘레베이터 앞에서 더블유모차와 화난 여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엘레베이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10분 동안 비상전화로 라이트레일 직원과 싸우고 있다고 여자가 말했다. 둘째가 자고 있는 유모차를 나는 번쩍 들고 열 개가 넘는 계단을 내려갔다. 내 뒤를 따라 내려오는 딸아이는 넘어질 리 없다.


엘레베이터는 타는 사람없이 문만 열렸다닫혔다 하고 있었다. 나는 그냥 집으로 가려다가 아이들을 계단 밑 안전한 곳에 세워두고 여자를 도와줬다. 아기가 타고 있는 카시트를 더블유모차에서 분리하고 유모차에 타고 있던 큰 애를 내리게 한 다음 여자는 아이들을 챙기고 나는 유모차를 들고 계단을 내려왔다. 우리가 낑낑대는 동안 라이트레일이 하나 도착했다. 우리를 비켜가는 사람들의 눈초리와 발소리 사이에 시간차가 있다. 계단 아래에서는 딸아이가 우리를 지켜보면서 동생을 지키고 서 있었다.


내 코가 석 자인 시절이 끝나가고 있다.



keyword
준혜이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팔로워 352
매거진의 이전글남편의 런닝셔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