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류연재

저예요

by 준혜이

이삿짐 센터 세 군데에 전화를 걸어 이사비용 견적을 받았다. 모두 다르게 견적을 내주었다. 나는 전화를 내려놓고 종이에 적힌 숫자들을 바라보면서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누군가는 나보다 싼 비용으로 이사를 하겠구나 싶었다. 그렇다면 나는 아는 사람에게 이사를 해야겠다.


작년에 우리집 이사를 도와준 이삿짐 센터 아저씨는 내가 전화한 이삿짐 센터 세 군데 중에서 중간 가격을 불렀다. 아저씨에게 내가 알아본 가장 낮은 이사비용을 알려주고 나는 이번 이사비용을 10%할인 받기로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밴이 아니라 트럭이 와야한다고 나는 아저씨에게 두 번이나 말했다. 지난 번 이사할 때 두 번 왔다갔다 하느라 서로 고생스러웠다고 내가 덧붙이자 아저씨는 트럭을 새로 샀다고 자랑하듯 이야기했다. 아저씨도 나를 기억하는 것 같았다.


아저씨와 전화를 마치고 나는 기분이 좋았다. 작년에 이사하면서 아저씨가 이삿일에 서툴러보여 짜증나고 아저씨의 미래가 걱정스러웠는데 트럭을 샀다니 축하할 일이다. 내 생각대로 사람일이 망하거나 세상이 끝나지 않는다는 걸 이렇게 확인한다.


나는 문자로 아저씨에게 이사갈 집의 주소를 보내면서 작년보다 이삿짐이 많이 늘지 않았다고 했다. 이사갈 집에 계단이 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여전히 그림을 그리시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우리집은 정말로 작년보다 짐이 많이 늘지 않았을까. 이제는 필요없는 아기용품들을 중고시장에 내놓지만 별 성과가 다. 내가 원하는 가격에 물건을 팔지 못하면 그냥 버려버리고 말겠다는 이상한 심보만 남았다.


체인징 테이블만 팔렸는데 나는 낯선 사람에게 우리집 호수까지 알려주는게 싫어서 둘째를 안고 체인징 테이블을 끌고 내려가느라 고생했다.


집 안에 가구가 하나 사라졌는데도 후련하지 않다. 체인징 테이블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비울 수 없게 만드는 애들 장난감과 책들 때문이겠지. 그래서 나는 아저씨에게 작년보다 이삿짐이 줄었다고, 늘었다고가 아니라 많이 늘지 않았다고 밖에 말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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