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갈 준비를 하면서 매일매일 조금씩 꾸준히 하는 일의 위대함을 보았다.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하면서 짐 정리를 하니까 일 하는 것 같지도 않고 이사 당일에 허겁지겁 짐을 싸게 될 것만 같은 불안에 사로잡히기도 했는데 오늘보니 서랍이란 서랍은 죄다 비어있고 딸아이 방은 보기에 무거운 상자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사소한 일이라도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나는 무언가 하고 있는 것이다.
서서히 짐 정리가 되어가면서 이 집은 내가 첫 눈에 반한 그 모습을 되찾는다. 이 집에 깃든 나를 지우고 새로 사랑에 빠진 것 같은 마음으로 나는 떠난다. 공간을 나로 채우고 나의 소유로 장식하는 게 결국 나를 내 안에 살게 하는 일이어서 집 밖에서는 돌아가고 싶고 집 안에서는 나가고 싶어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너무 많은 것을 가졌다. 나에게 필요한 건 그렇게 많지 않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까지 함께 할 단 하나의 소유를 찾기 위한 과정이라면 어서 빨리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내 단 하나의 숟가락, 단 하나의 양말, 단 하나의 모든 것. 가족은 이미 이루었으니 잘 지켜나가기만 하면 되지만 나는 사랑해도 어쩔 수 없는 밤에 버릴 수 없는 것을 버리고 후회하는 꿈을 꾼다.
나의 흔적을 벗고 다시 아름다워진 이 집에서 내가 사라진 세상의 아름다움을 본다. 내가 아는 모든 네가 없는 세상은 아름다울 리 없지만.
잦은 이사는 정신건강에 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