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려말하기

by 준혜이

내가 원하는 것을 즉각적인 거절없이 얻는 방법은 상대방의 입에서 내가 듣고 싶은 말이 나올 때까지 나의 요구를 돌려서 말하는 것이다. 나는 이게 어른들이 즐겨쓰는 스트레스 수치 '상'에 해당하는 대화 기술이라고 생각했는데 돌려말하기는 아주 어릴 때부터 엄마를 상대로 아이들이 연마해 온 안된다는 대답 방지 대화법이라는 걸 최근 알게 되었다.


딸아이가 컵케이크 하나를 다 먹자마자 남편이 딸아이에게 케이크 팝을 사주었다. 딸아이는 이거 지금 먹으면 안되지? 나에게 물었고 나는 딸아이에게 저녁을 먹고나서 케이크 팝을 먹으라고 대답했다. 컵케이크 가게를 나서면서부터 배가 고프다는 딸아이가 이상했지만 우리는 가까운 가게에 들어가 딸아이에게 맥앤치즈를 사줬다. 딸아이는 배가 부르다며 맥앤치즈를 반도 먹지 않았고 이제 저녁을 먹었으니 케이크 팝을 먹겠다고 했다. 케이크 팝의 존재에 대해 금세 까맣게 잊고 있었던 나는 그제서야 배고프다던 딸아이가 남긴 맥앤치즈를 이해할 수 있었다.


딸아이에게 내일 먹을 초콜렛을 사주면 딸아이는 지금 당장 초콜렛을 먹을 수 없는 게 슬프다. 눈 앞에 좋아하는 것을 두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을 아이에게 만들어 주는 게 싫지만 주말 저녁 장을 보러가면 어김없이 이런 일이 생긴다.


차에 탄 딸아이가 초콜렛이 다 녹으면 어떻게 하냐고 묻는다. 나는 그게 지금 초콜렛을 먹어야겠다는 딸아이의 요구임을 안다. 초콜렛이 녹으면 냉동실에 넣어 얼려주겠다고 대답하면서 나는 딸아이와 인간 대 인간으로 맞선다. 나는 돌려서 말하는 사람이 싫다. 내가 사회생활 경험이 없어서 그렇다해도 어쩔 수 없다. 딸아이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내 두 눈을 바로 보면서 나 초콜렛 지금 먹을래, 라고 얘기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러라고 했다. 딸아이가 초콜렛을 먹고 싶어했는지 몰랐는데 똑바로 이야기해줘서 고맙다는 거짓말까지 보태서.


내가 그동안 딸아이에게 안된다는 말을 너무 많이 해온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안되는 줄 알면서 혹시나 하는 희망이 딸아이 마음 속에서 성장하고 있다. 딸아이에게는 나의 느린 대답이 필요하다.

초콜렛과 텔레비전이 없는 세상 아니면 초콜렛과 텔레비전이 나쁘다는 말이 없는 세상에서 우리가 만났다고 해도 딸아이는 자신이 원하는대로만 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엄마의 안된다는 말에 짓밟히면서 아이의 희망이 끈질기게 살아있는 방법이 돌려말하기라면 나는 조금더 너그러워져야겠다. 딸아이에게 초콜렛을 사다바치는, 디즈니 주니어 채널을 추가 신청한 남편에게도 말이다.


한 쪽 날개가 찢겨도 나비는 나비생활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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