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 커피

by 준혜이

커피를 좋아해서 나는 시도때도 없이 커피가 마시고 싶다. 지금은 커피를 마실 때가 아니라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순간에 응급실 자원봉사자가 내 손에 들려준 사려깊은 커피는 두 겹의 스티로폼 컵 속에서 따뜻하다.


8월 한 달 동안 응급실에 세 번이나 갔다. 둘째가 40도가 넘는 고열에 시달렸고, 딸아이는 복통을 호소하면서 먹고 마신 모든 것을 게워냈다. 두 번 모두 아이 상태가 괜찮아질 때까지 응급실에서 기다리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모든 응급 상황이 정리되고 나서야 출장지에 있는 남편에게 연락할 수 있었다.


아픈 아이, 아프지 않은 아이의 지루함, 아이가 아픈 것을 알면 멀리서 와보지도 못하고 걱정할 남편, 대범하고 침착한 줄 알았는데 손을 덜덜 떨고 있는 나까지 나를 지치게 만든다. 누구에게도 나눠지지 않는 나의 어려움과 나에게 너무 쉽게 더해지는 가족들의 곤란에 자원봉사자가 나타났다. 기대하지 않은 곳에 위로가 있다.


주말내내 열이 오르락내리락 하던 둘째가 월요일 아침,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멍한 표정으로 일어나 휘청거리며 걷다 넘어지길 반복했다. 휴가중인 남편과 나는 그 길로 아이들을 데리고 응급실에 갔다.


둘째에게서 뇌손상이 의심되면 전신마취를 하고 MRI 검사를 받아야 할 거라고 응급실 의사가 말했다. 둘째는 입원실에 들어와 비틀거리긴 했지만 넘어지지 않고 걸었다. 소아과 의사는 둘째의 피검사 결과 두 개의 바이러스가 발견되었고 백혈구 수치가 많이 떨어져 있다고 했다. 우리는 둘째 몸에서 열이 나지 않을 때까지 병원에서 살았다. 나와 떨어져서 잘 수 없다는 딸아이는 간호원들의 눈치를 보면서 병실 소파침대에서 남편과 두 밤을 보냈다. 간호원들은 환자가 아닌 아이는 병실에서 잠을 잘 수 없다는 말만 하고 딸아이를 쫒아내지 않았다.


병원에 입원해 있으니 아이들을 낳던 날 생각이 났다. 딸아이는 예정일보다 한 달 일찍 태어나는 바람에 친정엄마가 한국에서 올 수 없었고, 친정에 둘째 임신 소식을 알렸을 때는 산후조리를 도와줄 수 없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들어야했다. 괜찮다는 내 대답과 달리 온몸에서 가시가 돋는 것 같은 그 느낌이 되살아났다. 자책과 원망이 쉬운 대상은 모두 엄마로 살아간다.


남편은 스마트폰 게임에 집중하고, 딸아이는 텔레비전을 보고 둘째는 아이패드를 두드리면서 시간을 보낸다. 나는 내가 좋아했던 남자들의 이름 검색으로 엄마에서 도망친다. 병원에서 몸이 아프지 않으면 마음이 아프다.


집에 돌아온 둘째는 잠이 늘긴 했지만 건강한 아이같다. 남편은 둘째의 백혈구 수치가 정상이 될 때까지 출장을 가지 않기로 했다. 나는 커피나 마신다.


응급실에서 받은 장난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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