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는 내가 자신에게 화풀이하는 걸 안다. 그럴 때면 나에게 딸아이는 목소리를 높여 맞선다. 내 입에서 잘못했다고, 다음부터 그러지 않겠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딸아이의 성격은 나와 같지 않다.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상대방에게 화를 내고 사과를 받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주로 참다가 아무 상관없는 곳에 화풀이를 하면서 살아왔다. 딸아이가 나를 참아주길 기대하면서 내 안에 온전치 못한 감정을 더 나쁘게 포장해 딸아이에게 전해보지만 딸아이가 그걸 순순히 받을 이유는 없다. 말 한마디로 나를 자기 마음대로 부리는 내 인생의 최강자, 여기저기서 모인 스트레스 때문에 느닷없이 내 화풀이 대상이 되곤 하는 사랑하는 나의 약자. 딸아이에게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데 내가 주저함이 없는 건 우리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눈이 있어서가 아니라 나와 맞서는 딸아이가 정정당당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둘째가 입원해 있는 동안 나는 병실을 어지럽히면서 시끄럽게 노는 딸아이가 거슬렸다. 간호사가 우리 병실에 들어와 조용히 해달라고 말했을 때는 기쁘기까지 했다. 아픈 둘째 걱정이 최대치에 다다르자 내 눈에 들어온 건 식탁 위를 점령한 크레용이었다.
딸아이는 크레용을 정리하라는 내 말을 듣자마자 크레용을 손으로 밀어 바닥에 전부 떨어뜨렸다. 나는 바닥에 흩어진 크레용을 두 손으로 쓸어담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떨어진 거 엄마랑 같이 치울 수 있는데 왜 쓰레기통에 버렸어. 엄마꺼 아닌데 왜 엄마 마음대로 버리는 거야. 쓰레기통에 있는 거 다시 꺼내줘. 이건 다 엄마 잘못이야. 내 꺼를 왜 엄마 마음대로 해. 내가 일부러 떨어뜨렸지만 줍기 전에 벌써 다 버렸잖아.
딸아이의 영어가 언제 이렇게 유창해진건지 모르겠다. 크레용이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내가 예상했던대로 딸아이가 폭주한다. 화난 딸아이의 얼굴을 지켜보다가 나는 내가 아주 오래전부터 딸아이처럼 격하게 화를 내고 싶은 걸 참아왔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다시는 딸아이 물건을 함부로 버리지 않겠다고 딸아이와 약속했다.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딸아이가 고분고분했으면 좋겠지만 우리 사이에는 정의가 있다.
둘째는 병원에서 퇴원한 뒤로 열이 나지 않았고 밥도 잘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