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류연재

마드리드에서 늦잠을

by 준혜이

새벽 두 시에 온 가족이 일어나 달걀후라이랑 귤을 먹고 점심 때까지 잤다. 냉장고에 들어있지 않은 달걀을 사는 게 어색했지만 집에서 먹던 달걀 후라이보다 맛있다.



자고 있는 둘째를 깨우지 않고 옷을 갈아입힌 다음 우리는 마요르 광장으로 갔다. 딸아이가 친구 기념품을 사야한다고 해서 우리는 광장에 있는 기념품 가게와 장난감 가게 거의 모두를 들락날락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된 아빠와 중년의 딸이 같이 일하고 있는 장난감 가게에서 마드리드 전통의상을 입은 인형을 두 개 샀다. 딸아이에게는 친구가 좋아할 만한 선물을 고르는 것과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찾는 것이 같은 의미이다.





점심으로 하몽, 샌드위치를 먹고 길거리에서 노래하는 남자들을 구경했다. 둘째에게 길바닥에 놓인 기타 케이스에 돈을 넣게 하자 남자들이 둘째에게 시선을 몰아주며 노래하고 박수쳤다. 둘째는 기타 케이스에 넣은 돈을 도로 꺼냈다가 넣었다. 남자들의 노래도 둘째에게 다시 집중되었다가 흩어졌다. 어디선가 홈리스가 나타나 둘째에게 동전이 든 컵을 내밀었지만 이미 빈 손인 둘째를 내가 번쩍 안아올렸다.



우리는 남자들이 부르던 라밤바를 흥얼거리며 프라도 미술관으로 걸어갔다. 오늘이 미술관 기념일이라 입장료를 받지 않았다. 얇은 외투를 입어도 춥지 않은 날씨에 미술관으로 걸어가는 동안 아기띠 속에서 잠든 둘째는 미술관의 오래된 그림처럼 전시할 만 한 순간이다. 딸아이는 몇 몇 그림에 관심을 보이다가 타블렛을 꺼내 비디오를 보았다. 예술이 버틴 세월만큼의 지루함이 딸아이를 덮치고 있다. 그래도 우리 딸만 미술관에서 그러고 있는 건 아니었다.



루벤스의 그림 "The Origin of the Milky Way" 앞에서 나와 딸아이는 한참동안 낄낄거리며 좋아했다. 모유수유가 만든 우리의 유대감을 기쁘게 확인한 그 순간, 우리 뒤에서 여자 두 명이 그림을 보면서 역겹다 말하고 있었다.

https://en.m.wikipedia.org/wiki/The_Origin_of_the_Milky_Way_(Rubens)


남동생과 시동생에게 줄 티셔츠를 사면서 내 것도 하나 샀다. 딸아이는 유투브 대신 포켓몬고를 틀었다. 우리 동네에서 볼 수 없던 포켓몬이 나타나 남편과 나까지 흥분했다.


쌀국수를 먹을까 했는데 식당이 4시 30분 부터 8시까지 문을 닫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맥도날드에 간다.


맥주와 치킨윙을 파는 맥도날드라면 매일 가도 상관없다.


아이들을 데리고 밤늦게 산미구엘 마켓에 갈 수 있었던 건 시차 덕분이었다. 마켓 안에 사람들이 무척 많았는데 그 많은 사람들은 연인들에게는 없고 유모차를 밀고가는 우리 길에만 붐비는 것 같았다. 남편은 음식 주문에 타고난 사람 같았고.


하몽은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맛도, 맛있어서 소름이 끼치는 것도 아닌데 하루를 마치고 침대에 누우면 나도 모르게 하몽 생각을 하고 있다. 미국 공항에 하몽찾기 집중 훈련을 받은 경찰견이 있다는 걸 알게 된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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