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둘째가 태어난 날, 나와 둘째에게 청구된 병원비가 이제서야 해결되었다. 미국 의료시스템에 무지한 나 자신을 탓하던 날들과 아무 문제없이 지나가는 일상 틈틈히 거대한 숫자의 미행을 느끼던 날들이 드디어 끝났다.
의료보험회사, 병원과 내가 삼자통화를 하던 날 나는 연애도 일도 삼각관계는 힘들다고 생각했다. 원하는 게 분명하면 억울한 상황에 처하기도 쉽다. 나는 하루빨리 병원비를 청산하고 싶었지만 누구도 우리의 정확한 병원비를 알려주지 않았다. 우리집 주소가 두 번이나 바뀌는 동안 나는 의료보험회사와 병원에 전화를 걸어 꼬박꼬박 우리의 이사를 알렸다. 그러면서 반갑지 않은 편지를 기다리는 마음도 간절하다는 걸 나는 알게 되었다.
침착하게 기다리라는 병원 직원의 말을 반복해서 들은 나는 둘째가 태어난 병원을 욕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검색해 읽으며 마음을 달랬다.
오늘 병원 직원과 통화를 하면서 그동안 병원비 업무를 보는 사람들이 우리 의료보험 정책을 제대로 보지 않고 청구서만 계속 보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료보험회사는 빠지고 나와 병원 둘의 전화통화 20분으로 우리 비싼 아들이 그냥 아들이 되었다. 병원비에는 이자가 붙지 않는다.
아이를 낳았는데 병원비 걱정을 하고 아이가 다쳐 응급실에 가면서 의료보험회사에 전화를 거는 짜증스러운 경험을 해보니 잘 된 의료복지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지는 않아도 일상 생활에서의 불안감은 어느 정도 줄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멍청해서 이런 일을 겪는 건 아닐까 스스로를 구박하고 있을 때 초음파 검사를 받고 4500불짜리 청구서를 나와 같은 병원에서 받았다는 인터넷 상의 어떤 여자의 분노가 얼마나 위로가 되던지 ㅋㅋ
의료복지가 사람의 성품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도 연구해볼 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