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류연재

화해의 기술

by 준혜이

아주 오랜만에 남편이랑 싸웠다. 같은 상황 속, 서로 다른 입장과 감정에 대해 내가 내뱉은 농담을 남편이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벌어진 일이었다. 기분이 나빠진 나는 남편과 내가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남편이 웃어주지 않은 나의 모든 농담들을 떠올렸다. 10년을 알고 지낸 사이에 통하지 않는 농담을 만들어내는 나의 문제일까. 그렇다고 내가 자, 이제부터 나는 농담을 할거야. 웃을 준비를 해줘, 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일요일 저녁에 아이들의 눈치를 보며 하다말다한 말다툼은 남편의 사과를 받는 척만 하고 화를 다 풀지 않은 내 탓에 월요일까지 계속되었다. 휴일이라 유치원에 가지 않은 딸아이를 재미있게 해주려 워터파크에 가기로 한 월요일. 나는 혼자 집에 있고 싶었지만 딸아이에게 워터파크보다 중요한 건 사이좋은 엄마 아빠라는 걸 알기에 아무 말없이 남편과 아이들을 따라나선다.


화해란 무엇일까. 남편의 미안하다는 말을 들어도, 남편이 내 말을 어떤 식으로 오해한 건지 자세히 설명을 해줘도 내 기분은 풀어지지 않는다. 남편을 내 침묵 속에 영원히 고통받게 하는게 내가 원하는 화해인가. 워터 파크로 가는 차 안에서 딸아이 모르게 우리가 싸울 방법은 없어서 나는 굳게 다물었던 입을 열고 남편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여전히 기분이 나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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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즐겁게 물놀이를 했다. 둘째가 물을 겁내지 않고 마구잡이로 노는 바람에 나는 금세 피곤해졌다. 그러다 나는 내 두 다리를 휘감고 있는, 지난 여름과 함께 잊혀진 검은 존재를 발견했다. 남편과 싸우느라 내가 다리 제모하는 걸 잊은 것이다. 나는 워터파크를 거니는 다리만 아저씨가 되었다. 내가 둘째와 놀고 있는 얕은 수영장은 수초가 흔들리는 어항으로 변했다. 나는 내 다리가 부르키니를 입은 여자들의 맨 다리를 상상해보는 사람들의 수고를 덜어주길 바랐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수치심이었다.


둘째가 노는 얕은 수영장에 아빠다리를 하고 앉아 나는 딸아이와 깊은 수영장에서 놀고 있는 남편을 생각했다. 대머리가 되어 내 머리카락은 감히 부러워해보지도 못하고 내 다리를 어렵게 자기 민머리에 대보는 남편을. 나는 이렇게 남편과 혼자 완벽하게 화해했다.


집에 가는 길 남편에게 내 부끄러운 아저씨 다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남편도 내 다리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고 했다. 그걸 보고 자신이 얼마나 나를 속상하게 했는지 반성했다고 한다. 그 얘길 듣다 터져나온 내 웃음소리는 통곡소리와 다를 게 없었다.


자,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은 농담이야. 너는 나중에 대머리가 되어서 내 다리털을 부러워하면서 남은 생을 살게 될거야.


싸움은 하나라서 둘이 같이, 화해는 각자 하나씩 둘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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