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하는 날 아침, 이삿짐센터 아저씨가 몰고 온 트럭을 보고 우리는 어이가 없었다. 나는 이사하기 2주 전 아저씨에게 우리가 살던 곳이 방 하나짜리 아파트이긴 하지만 어른 둘과 아이 둘이 살았다고 미리 말해두었다. 집 안 가구들이며 쌓아놓은 상자들을 아저씨에게 사진으로 보내고 다시 확인 전화까지 했다. 그런데도 아저씨는 밴보다 큰 트럭같지 않은 트럭을 몰고 온 것이다.
트럭을 가득 채워 한 번, 반 만 채워 또 한 번 고속도로를 달린 뒤에야 이사를 마칠 수 있었다. 길에다 한 시간을 버린 셈이다. 나는 마음 속으로 한 시간을 제한 이사대금을 계산해보았다.
아저씨는 순순히 한 시간을 뺀 돈을 받겠다고 했다. 이사대금을 치를 때 벌어질 여러 상황을 머릿 속에 그려보며 싸울 준비까지 마친 나는 머쓱했다. 돈을 받아 급히 뛰어가는 아저씨를 보면서 우리 이사가 늦어져 아저씨의 하루가 길고 고생스러울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불쾌했다. 아저씨는 이 일을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은 게 분명했다. 우리는 돈을 주고 받을 때 실랑이를 벌였어야 한다.
얼마 전에 카톡에 모르는 사람이 추가되어있는 걸 발견했다. 예쁜 건축물 그림과 색연필이 프로필 사진이었다. 구글에 이름을 검색해보니 전시회까지 열었던 미술가의 카톡이었다.
이삿짐센터 아저씨가 미술가였다. 내가 이삿날 아저씨에게 화내지 못한 건 아저씨의 순한 태도 때문이었는데 정말 내 짐작대로 아저씨는 일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모양이다. 인터넷에 그 흔한 리뷰마저 하나 없다.
아저씨는 반듯하게 접혀 차곡차곡 포개진 빨래방의 셔츠를 그려 전시회를 열었다. 이 세상 많은 집의 이사를 하면서 얻은 영감으로 아저씨가 다음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면 좋겠다.
노동하는 예술가, 생활하는 예술가 아저씨는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다.
이삿날 구부러진 서랍장 손잡이가 아주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