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류연재

아무거나 다 김치

by 준혜이

몬트리올에는 스물 셋의 나와 스무 살의 남동생이 헤매며 살던 길이 아직도 그대로 있다. 별 생각없이 시작한 유학생활에서 많은 것들이 낯설고 불편했지만 그 중에서 제일 괜찮은 척 하기 힘들었던 건 4월까지 내리는 눈과 김치였다.


남자친구의 할머니께서 주신 양배추 김치를 처음 받아들고 엄마 김치 생각을 심각하게 했었다. 나한테 말한 적은 없지만 동생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선지 덩어리같던 비트 깍뚜기를 보고 놀라서 입도 대지 못한 기억도 난다. 어쨌든 몬트리올의 김치문화는 엄마 김치밖에 모르던 우리를 성숙하게 만들었다. 몬트리올이 거대한 고아원 같던 시절이었다.


얼마 전에 갓김치가 먹고 싶어서 겨자잎을 사다가 김치를 담궜다. 네이버 영어사전이 갓김치는 pickled mustard leaves and stems, mustard pickles 라고 했다. 겨자잎김치에서는 쓴 열무김치에 와사비를 조금 섞은 맛이 났다. 그 맛이 나쁘지 않아서 앞으로도 종종 해먹을 생각이다. 원래 갓김치가 어떤 맛을 내야하는 지 모르겠다.


아무거나 다 김치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에 오늘은 케일로 김치를 만들었다. 엄마한테 겨자잎김치와 케일 김치에 대해서 얘기했더니 웃으면서 누구한테 배웠냐고 묻는다.


내가 만든 김치에는 과거가 없다. 배추김치 만들기가 꺼려지는 이유는 친정엄마, 시어머니, 시할머니, 친구 엄마 등 배추김치의 과거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아무거나 다 김치, 아무거나 다 피자, 아무거나 다 부침개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창의적일 수 있는 기회가 아주 많다는 사실에 내일이 오는 게 지겹지 않다.




준혜이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팔로워 354
매거진의 이전글이사와 전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