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 월요일, 오타와 미국 대사관에서 나는 비자 면접을 본다. 둘째 여권은 내가 미국 비자를 받은 뒤에 만들기로 해서 오타와까지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없다. 나와 아이들은 뉴욕에서 기차를 타고, 남편은 출장지인 파고에서 비행기를 타고 우리는 시라큐스에서 만나기로 했다. 시부모님이 차를 타고 오타와에서 시라큐스로 오면 우리는 그 차로 오타와까지 갈 예정이다. 흩어진 가족이 모이는 데 배는 필요없다. 비행기로 두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기차로, 차로 이동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전업주부인 나의 자산,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의미있게 쓰인다.
가방 네 개와 딸아이 카시트, 둘째 유모차를 내가 책임진다. 아기띠는 옷처럼 입는다.
집에서 뉴욕 펜스테이션까지 우버를 타고 갔다. 우버 운전수가 우리 아파트에 살려고 했다는 얘기를 하길래 나는 윗집 발걸음 소리가 다 들린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우리 아파트에 살지 않은 걸 후회할 수 없게 말이다.
아이가 있으면 낯선 사람들의 도움이 진심으로 감사하다. 기차역 직원들의 도움은 아깝다는 마음이 포함되지 않은 팁으로 보답한다.
우리는 기차표 두 장을 인터넷으로 사고 기차역에서 표를 프린트했다.
유모차를 접고 가방을 올리는 데도 처음보는 사람의 손을 빌려야했다. 나 혼자 많은 걸 해낼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나 싶게 도움받는데 익숙하다.
나는 애들과 좌석 네 개가 마주보는 자리에 앉았다. 네 좌석을 다 차지하고 편히 가려는 속셈이었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우리 앞에는 열 두살짜리 남자애 두 명이 앉았다. 나는 아이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나의 여행은 일상과 다를 바 없고, 나는 어디로든 떠나길 주저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모두 아이패드를 가지고 있었다. 좋은 세상이지만 지루할 틈 없이 자란 아이들의 인내심이 어디까지일까 걱정스러웠다.
우리 옆좌석에는 할아버지와 내 딸아이와 동갑인 남자애가 여행 중이었다. 내가 짐을 올리고 유모차 접는 걸 도와준 할아버지다. 할아버지는 스마트폰을 쓰지 않고 그 손자에게는 아이패드가 없다.
시라큐스에는 우버가 활발하지 않아서 우리는 택시를 탔다. 호텔에 먼저 도착해 남편을 기다리는두 시간이 우리의 여행시간보다 더 길었다.
남편에게 해 줄 많은 이야기도 나의 졸음을 막지 못했다. 사실 나는 혼자 애들이랑 기차를 타야하는 게 너무 긴장되서 여행을 떠나기 전날 밤,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 우리가 탄 기차 Amtrak, Empire service는 뉴욕 펜스테이션에서 버팔로 나이가가라 폭포까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