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남편은 시카고로 출장을 다닌다. 남편이 학생으로 2년을 보낸 에반스톤이 있는 도시에 이제는 일을 하러 간다. 얼마 전 남편 동기가 한국에서 시카고로 출장을 왔다며 남편에게 잘 지내냐는 연락을 했다고 한다. 이런 우연이 숨어있는 인생이라면 내일을 기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시카고에서 오랜만에 만난 아저씨 둘은 자신들이 다니던 학교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지난 시간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좋은 줄도 모르고 우리가 그냥 살아버린 시간의 증인들이 함께 있을 에반스톤은 생각할수록 비현실적이었다.
대학 졸업 후에도 학교 근처에 살면서 회사를 다니던 친구가 있었다. 결혼하고 1년만에 한국에 간 나는 그 친구집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그래서 한밤중에 우리의 스무살을 다 바친 학교가 없어진 걸 확인하러 갈 수 있었다. 커다란 구덩이가 우리 눈 앞에 학교 대신 펼쳐졌다. 밤보다 더 까만 그 구덩이에 별이 뜬다면 밤하늘에서 보다 더 빛날 거라는 생각을 그 때는 할 수 없었다. 괜한 짓을 했다는 후회가 밀려들 때 내 양 옆을 지키며 같이 아쉬워하던 친구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남편이 나에게 보내준 에반스톤 사진 몇 장에 나까지 기분이 이상해졌다. 우리가 떠난 뒤 그 곳이 폐허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달라진 기숙사의 사진은 우리집 문을 열고 들어갔는데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흉내내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게 했다. 함께 학교를 다니던 사람들이 떠나고도 그 곳에 남아 새로운 일상을 꾸려나간 사람들은 마음이 허전했을까. 사라지는 학교보다 떠나는 학생이 자연스럽지만 사람들은 마음에 건물을 세우지 않고 친구를 새긴다.
4월에 아이들을 데리고 남편과 에반스톤에 가기로 했다. 딸아이가 지금보다 어리고 둘째가 없던 시절과 스스로 더 어른이 될 수 없을 만큼 어른스럽다고 생각하면서 한심하게 굴던 내가 있는 곳, 유령처럼 우리를 반겨줄 기억속의 사람들이 여전히 그 때처럼 살고 있을 그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