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갈 수 있고,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인생 전문가다, 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단순한 일상을 지속하다보면 어제와 오늘의 작은 차이가 내일과 10년 후의 것처럼 아득히 느껴질 때가 있다. 이럴 경우 나는 내 일상에 잡힌 주름을 모른 척 할 수 있을 때까지 그것에 대해 생각한다.
얼마 전 우리 가족은 크고 좋은 집들이 모여 있는 동네에 초대받아 이 곳으로 이사 온 후 처음으로 가보았다. 가끔 여기저기 오고가며 본 적 있는 동네였는데 이렇게 들어가보니 내 좁은 세상에 출구가 하나 새로 생긴 기분이다. 이래서 친구가 많으면 바빠지는 건가 싶기도 했다. 나의 세계가 친구와의 약속으로 넓어지고 그만큼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멀어질테니까. 딸아이 덕분에 나는 처음 만난 어른끼리도 금방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 아이의 이름과 나이를 묻고 대답하면 그 다음은 아주 자연스럽다. 그래도 앞으로 우리가 받을 초대장의 대부분은 아이들의 이름만 적혀있을 것이다.
딸아이 친구 집에 들어서자마자 올해는 이사 생각을 하지 않고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다고 좋아하던 내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나는 방이 여러 개, 앞뜰, 뒷뜰, 지하실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어졌다. 그런 집이 내 것이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도 언젠가 어딘가에 정착할 수 있을까. 인내심을 잃은 나는 그게 바로 지금 당장이었으면 하고 바랐다.
서로 다른 노력의 과정을 거쳐 삶의 어느 지점에서 만난 우리는 지금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지만 각자의 인생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다른 단계에 있다. 타인의 소유에 온 정신을 사로잡힌 나에게 드는 생각이라고는 이 공간과 순간은 분명 우리의 미래가 되어야 한다는 것 뿐이었지만 말이다. 그러다 주인에게 소유는 과정이 있는 결실이라는 걸 깨닫고 나는 겨우 정신을 차린다. 그 과정에 도사리고 있을 수많은 선택과 포기, 아니 나는 아예 과정의 생을 감당하고 싶지 않다.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라고 믿고 싶다.
사실 주말부부이고 아이들과 한 방에서 같이 자는 나의 일상에 앞뜰과 뒷뜰은 자장가로만 불러도 충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