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류연재

기다려온 날들

by 준혜이

우리에게 첫아이가 생기고 오래 지나지 않아 남편은 어렵게 퇴직을 결심했다. 내가 커피와 라면을 끊고 뱃 속의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는 동안 남편은 회사생활을 하면서 다시 학생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우고 키워나갔다. 아이가 태어나고 남편은 두 달의 육아휴직 기간을 나이 든 자신의 뇌를 조리하는데 전념했다. 내가 호르몬의 노예가 되어, 처음 느껴보는 사랑에 미쳐 품 안의 아이말고 중요한 게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살던 시절이기도 했다. 아이는 우리를 바꾸었다. 그게 아니라면 세상의 모든 첫아이가 부모와 함께 방황할 운명을 타고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기숙사 생활은 나이를 거꾸로 먹고 있다는 착각과 함께 시작되었다. 나는 혼자, 친구들이랑 다니는 학생들을 매일 보면서 그들이 나를 비추는 거울이라 생각했다. 한 살 반짜리 아이와 항상 손을 잡고 다녔으면서 말이다. 어느 늦은 밤, 쉰 목소리를 내며 기숙사로 돌아온 남편이 나에게 별다른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그 하루만큼은 분명 자신이 이십대로 돌아간 것 같지 않았을까.


기다려 온 날들에 살게 된 우리에게는 기다릴 때는 없던 좋지 않은 날들이 꽤 있었다. 그래도 나쁜 기억은 끝까지 살아남지 않는다. 걷기 싫다는 큰 애와 유모차에서 발버둥치며 안아달라는 작은 애랑 같이 다니는 나의 매일을 잊고 5년 전 여기서 가끔 만나 같이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던 언니들과 강가의 풍경만 떠올리면서 에반스톤에서의 오늘을 기다린 나를 보면 알 수 있다.


다시는 볼 수 없다고 단정하며 떠나고 헤어진 많은 순간마다 나는 지금보다 더 어렸으면서 우리에게 내일이 없는 것처럼 굴었다. 하지만 영원은 공평하게 이별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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