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와 춤추는 집

by 준혜이


밖에서 현관문을 열면 내 몸이 가리고 남은 빛이 어둠을 향해 뻗은 열 다섯개의 계단을 보여준다. 전등 스위치를 올리고 문을 닫고 신발을 벗는 동작의 연결은 늘 내가 원하는만큼 매끄럽지 않다. 계단 앞을 막아선 내 앞에 허리를 구부리고 있는 두 아이들이 각자 신발을 두 켤레씩 신고 있었던 것처럼 시간을 쓰고 나서야 겨우 양말로 감춘 두 발을 계단 위에 내려 놓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의 엉덩이를 보면서 느리게 계단을 오른다. 계단 끝에 달린 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간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 연한 갈색 카페트가 깔린 거실 바닥에 빛을 가린 창살 그림자가 우리 가족의 생활에 그물을 친다. 나는 거실 오른편의 부엌으로 들어가 물을 마시면서 손을 씻으라고 소리쳐 아이들을 나의 반대편으로 내몬다.

우리는 지난 3년간 1년에 한 번씩 이사를 했다. 우리가 살아낸 날들이 물건이 되어 모이는 것을 해마다 이사 준비를 하면서 확인했다. 하지만 이사와 함께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고 다가올 시간을 기대하는 의식의 무게는 이삿짐의 무게와 달리 매해 가벼워졌다. 일상을 상자 속에 넣어 테이프로 봉인할 때마다 나는 네모는 진리, 동그라미는 럭셔리라고 생각했다. 지구는 네모가 아니어서 포장 이사가 어렵겠다는 공상과 함께 지구를 닮은 집으로 마지막 이사를 들어가는 우리를 그려보기도 했다. 집은 우리의 일상 생활이 입은 몸이다. 이사 시작과 동시에 집 안에서 쏟아져 나오는 우리의 생활을 보면 이사만큼 집안의 순환과 정화에 도움 되는 일이 없다. 우리가 없던 공간의 처음 모습에 다시 그 안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찾아들기도 하지만 모든 것이 불가능해지고 나서야 가능해지는 그런 마음이 우리를 한 곳에 정착할 수 없게 한다. 그렇게 우리는 집 안에 깃든 우리를 지우고 새로 사랑에 빠진 것만 같은 마음을 가지고 떠나버리는 이사를 반복했다. 공간을 나로 채우고 나의 소유로 장식하는 게 결국 나를 내 안에 살게 하는 일이어서 우리는 어디서나 쉽게 머물 수 있다고 확신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 근처의 방 두 개짜리 타운하우스다. 여전히 월세 신세를 면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이 집으로 이사들어온 순간부터 층간소음에서 해방되었다.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 우리가 살던 4층짜리 아파트는 오래된 속옷 공장을 개조한 건물이었다. 우리는 그 건물의 3층에서 살았는데 우리가 이사 들어간 바로 다음날 아랫집 이웃에게 층간소음 신고가 들어왔다며 앞으로 조심해달라는 관리인의 이메일을 받았다. 3개월 뒤 나는 우리집 현관문 아래 틈 사이로 아랫집 이웃의 항의 편지를 받았고, 그 뒤로 또 3개월 지난 후에 아랫집 여자들은 우리집으로 항의 방문을 했다. 아랫집 여자들은 우리가 가구를 움직이는 소리, 우리의 발걸음 소리가 시끄럽다고 했다. 식탁 의자를 빼고 앉아 밥을 먹고, 아이들이 집 안을 걷고 기는, 우리의 삶이 그들에게는 못 견딜 소음이라는 사실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우리의 일상을 카페트 위로 올리고 아이들의 발을 양말이나 실내화 속에 숨겨놓고 지냈지만 어쩌면 아랫집 여자들이 귀를 막는 게 더 현명하고 빠른 해결책이었을지 모른다. 나는 한밤중에 퇴근해도 지치지 않는 윗집 여자의 하이힐 소리를 하나 둘 세어가며 잠을 청했지만 말이다.

이웃들이 소리로 일상생활을 함께하는 그 아파트에서 사는 동안 첫째 아이의 유치원 결석 일수는 항공 마일리지처럼 쌓여갔다. 우리 가족이 집에서 도망치는 여행을 자주 떠나게 된 것이다. 온 가족이 남편의 출장을 따라간 적도 여러 번이고, 주말이면 가까운 도시로, 휴일에는 더 먼 곳으로 집을 떠나 지냈다. 그러는 동안 우리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이 몇 개 되지 않는다는 걸 배웠다. 그리고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에서의 생활이 우리가 바라고 그리던 미래가 아니더라도 이미 어른인 나와 남편과 달리 아이들은 반복되는 일상에서 미래를 모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여행이 끝나고 집에 도착한 날이면 우리는 현관문을 세게 닫아 우리의 부재와 침묵으로 열린 아랫집의 축제에 끝을 알리는 폭죽을 터뜨렸다. 집을 떠나서도 집에 돌아와서도 매일 얼굴을 마주하며 같이 살고 있는 것처럼 신경쓰이던 아랫집은 결국 우리보다 일주일 먼저 이사를 나갔다. 깊은 밤 우리집 방바닥 밑에서 친구와 전화로 소근거리던 아랫집 여자의 목소리가 내 인생에서 영원히 퇴장했다.

저녁이면 천장 조명이 부족해서 거실 양쪽 모퉁이에 세워놓은 두 개의 플로어 램프 빛이 집 안의 벽을 온갖 물건 그림자로 채운다. 아이들은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밑 벽에 선 자신들의 그림자와 춤을 춘다. 이렇게 흥겹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우리는 열 네 개의 계단을 오르고 좁은 복도를 지나 안방으로 들어간다. 우리 네 식구는 안방에서 모두 같이 잔다. 그래서 안방 옆에 나란히 붙은 건넌방은 거의 쓸모없이 빈 방이다. 이 집에 이사 들어오고 한참 뒤에 알게 되었는데 우리집 안방 화장실에서는 옆집 아저씨가 샤워할 때 부르는 노래 소리가 들린다. 물줄기와 벗은 몸의 그림자도 춤을 출까. 우리의 삶의 방식과 필요에 따라 변신하는 집이 있었으면 좋겠다. 노래는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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