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이 지난 여름 같을 줄 알았어, 라고 시작하는 편지를 써서 앞집 여자 아이에게 주었다. 우리집 둘째와 생일이 같은 그 아이에게 생일마다 우리 둘째를 생각해달라고, 나도 둘째의 생일에 널 떠올리겠다고도 약속했다. 7월 말이면 앞집 가족은 멀리 이사를 간다. 우리는 딸아이 방학동안 시카고에 한달 간 가있기로 했다. 제대로 된 작별인사 없이 우리에게 남은 인연이 단 하루도 되지 않을까봐 나는 신경이 쓰였다.
지난 여름, 앞집 아이들, 우리집 아이들 넷을 쫒아다니며 내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부모님 눈 밖의 아이들이 얼마나 독립적이고 무모한 지, 서로에게 한없이 다정하다가도 순식간에 폭력적으로 변하는 아이들 곁을 맴돌며 놀랐던 일들이 떠오르면서 나는 아이들이 일년동안 무척 많이 자랐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자라나는 아이들을 구경하던 재미가 사실은 열살짜리 앞집 여자아이와 나 사이의 우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분홍색을 싫어하고,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돌돌마는 버릇이 있고, 축구, 야구를 좋아하고, 참가하는 여자아이들 수가 적어 소프트볼 토너먼트가 취소되었다고 얘기하면서도 괜찮다고 웃던 아이와 아이의 모든 말과 행동에 그 어떤 책임감, 죄책감없이 반응하던 나.
그동안 앞집 아이들에게 나의 이름은 우리 아이들의 엄마만으로 충분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헤어질 때가 되어서야 이름을 알려주는 기분이 이상했다. 서로의 아이들이 친구였다는 이유로 앞집 여자와 남자가 번갈아가며 나를 안아주고 우리 모두의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우리는 지금 시카고에 있다. 그리고 다음주에는 올 겨울 나를 한번씩 안아주고 떠난 딸아이의 친구 가족을 만나러 간다. 헤어진 다음을 기대해도 되는 이유가 있는 곳으로.
준혜이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