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의 아파트를 한 달 간 빌려서 생활하고 있다. 불교가 전공인 인도 여자는 우리에게 아파트 열쇠를 전해주고 중국으로 떠났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아파트에는 전공 서적으로 가득 찬 내 키만한 책장 하나가 집주인처럼 서 있었다. 인도 여자와 내가 얼마나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지 책장 속의 책 제목을 단 하나만 읽어봐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혼자만의 생활을 위한 청소와 아이들과 함께하는 생활용 청소는 대학원생과 엄마의 인생만큼 다르므로 나는 책 구경을 그만두고 집 안 곳곳의 먼지를 쓸고 닦았다. 깨끗함은 우리가 저지른 지저분함과 우리가 무시할 만한 더러움의 다른 말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아는 언니에게 빌려주고 온 우리집을 떠올렸다. 언니도 우리집에 들어가자마자 청소부터 했을까.
이 곳에서의 우리 생활은 불편하다. 아파트에는 TV랑 에어컨이 없고, 세탁기가 없고 엘레베이터도 없다. 빌린 차는 남편이 출퇴근하는데 쓰고 있어서 나는 차도 없다. 그래도 이게 끝나는 날이 정해져 있는 불편함이어서 그런지 크게 불만이 있다기보다 우리 나이가 갑자기 어려진 것 같고 우리가 원래 집에서 누리고 있는 생활이 이런 시간을 잘 지나온 기특한 결과라는 감격이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밥솥이 있다. 우리가 굳이 학생의 아파트를 빌리려고 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 생활에 해를 끼치지 않는 이런 극적인 변화를 앞으로 우리가 몇 번이나 더 만들어갈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고 말이다.
다리미를 찾아서 온 집안을 뒤지는데 내가 남의 몸 속에 들어가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여자가 두고 간 옷까지 꺼내입고 거울 앞에 서면 내가 정말 이상한 사람 같을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 집에 다리미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로 이렇게 오랜 시간 살고 있는데 다른 사람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내가 지금처럼 계속 살아간다면 나중에 살다가 만 기분으로 생을 마감하게 될 거라는 이 꾸깃꾸깃한 마음.
미장원에 가서 머리를 아주 짧게 잘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