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12일
안녕,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릴 시간도 주지 않고 재빠르게 나타난 선명한 두 줄에 나는 Oh my god I’m pr”a”gnant, 라고 너의 아빠에게 문자를 보냈어. 중요한 문자였는데 오타를 내고. 너의 시작을 나보다 더 기뻐하는 사람들 덕분에 나는 비교적 담담하게 너를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아. 나 누구보다 더 기쁘고 행복하지만 그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기가 어려워, 이렇게 담담하고 쿨한 모습으로 널 만나겠어. 나는 니가 딸이었으면 좋겠다.
2010년 7월 13일
기억할 수 없는 나의 맨 처음을 너로 경험하고 있는 지금, 나의 존재가 시작부터 얼마나 감동적인 가능성을 의미했는지를 알게 되었어. 너를 그리고 꿈꾸고 인정하는 하루하루는 나를 키운 엄마 아빠의 꿈과 현실을 닮아가겠지. 우리는 사이좋게 오래오래 함께 할거야. 내가 너의 처음을 기억하고 이야기 하는 대신 너는 나의 마지막을 진지하게 지켜봐줘야해. 몸 안에 생명을 품고 있으면서 죽음을 떠올리는 게 이상하지만 네가 나를 사람으로 완성시킨다는 느낌 때문인지 나의 끝, 마지막에 대한 생각을 떨쳐내기가 힘들어. 내가 꿈을 꾸면 너도 그 꿈을 볼 수 있어? 나는 너의 정신에도 연결된 사람일까? 듣고 싶은 얘기가 많은데 넌 울기만 하겠지.
2010년 7월 24일
먹고 자고 먹고 자고 있다고 말하니까 아빠는 아주 잘하고 있다고 좋아하셨어. 역시 아기를 가진 여자의 최고 미덕은 젊음과 게으름. 나는 네가 내 뱃 속에서 한 1년은 살아주길 바라. 내가 너를 가진 걸 알고 나서 엄마는 나를 다시 자기 뱃 속에 넣어버린 것 같아. 한 번 뿐인 인생을 늘 초조해하면서 살지 않아도 되는 건 살면서 단 한 번 만 겪을 수 있을 줄 알았던 일들이 우리의 사랑과 상상력으로 얼마든지 되풀이 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의 엄마는 내가 너를 낳을 때, 다시 한 번 나를 너의 엄마로 낳겠지. 미리 말하지만 이 세상은 엄마 뱃 속이 아니라서 위험하고 눈물나게 재미있을거야.
2010년 7월 30일
너한테 어떤 이름을 선물해야하나 열심히 고민하고 있어. 니가 여자애일거라고 확신하면서! 나는 세상에서 내 이름이 제일 예쁘고 나한테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아. 이혜준이랑 결혼해서 애들 이름까지 다 이혜준으로 지어버리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으니까. 아무튼 오늘도 내일도 내 안에서 편안하길 바라.
2010년 8월 11일
너도 루시드폴 노래를 좋아했으면 좋겠어. 오늘은 내가 루시드폴 노래를 들으면서 따라부르기도 하고 그럴테니까. 자장가로 오, 사랑을 불러줄게. 내가 따뜻한 사람이 아니란 걸 넌 이미 알고 있겠지. 아직도 난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을 어떻게 사랑해야하는지 모르겠어. 받는 사랑에만 익숙해져버린 탓일까. 네가 아무한테도 안기려 하지 않고 나만 찾길 바라는 것도 나답다는 생각을 해. 아, 나는 정말 어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