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식은 게 아니고

by 준혜이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둘째와 학교에 다녀온 딸아이를 그림같은 미소로 맞이하고 우리가 서로에게 전하는 다정한 말로만 오후를 보낼 상상에 나는 끝나가는 여름이 아쉬워도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완벽하게 비현실적인 상상은 나를 행복에 취하게 만들었을 뿐 우리 사이에 서로 떨어져 지낼 시간이 생겼더라도 아이는 여전히 아이, 아이와 함께 있지 않은 시간을 보낸 어른의 인내심은 엄마로 살아온 세월이 무색하게 빠른 속도로 바닥을 치고 있다.


둘째는 어린이집에 나가기 시작한 날부터 일주일 넘게 아침마다 통곡을 했다. 교실 문 앞에서 실연당한 남자처럼 나에게 매달리고 제발 자기 좀 여기서 데리고 가달라고 애원하고 결국 선생님 손에 이끌려 억지로 나에게서 멀어지기를 반복하다 어느 순간 울지 않고 교실로 뛰쳐들어가더니 이제는 매일 어린이집 문 앞에서 내가 아이에게 포옹을 구걸하고 있다. 둘째의 눈물을 견디기가 어려워서 아이를 내가 조금 더 데리고 있다가 어린이집에 보낼까 고민한 순간이 있었지만 우는 아이를 두고 집에 돌아와 혼자 된 내 마음에 후련함이 하나도 없었던 게 아니라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적응시키고 말았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된 딸아이는 나에게 과분한 아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학교생활을 잘 하고 있다. 딸아이에게 작지만 중요한 생활의 변화를 주고 싶어서 그동안 주다말다한 용돈을 신경써서 제대로 챙겨주고 있다. 그렇게 받은 용돈으로 아이는 학교에서 아이스크림이나 초콜렛 우유를 사먹고 주말마다 타겟에 가서 장난감 쇼핑을 한다. 일주일에 10불씩 주고 있는데 어제는 내가 10불짜리가 없어서 20불을 주고 아이에게 10불을 거슬러 달라고 했더니 아이가 화를 냈다. 벌써부터 돈 욕심을 부리고 자신은 가게가 아니라서 거스름 돈을 줄 수 없다는 이 아이는 역시 나에게 과분해, 라고 생각하며 나는 강도처럼 딸아이에게서 10불을 빼앗았다.


집의 고요함에 나는 조용히 환호한다. 혼자 있는 동안 집안 정리를 열심히 할 계획이었는데 청소는 애들이 있을 때도 대충 할 수 있는거고 애들이 없을 때만 할 수 있는 걸 해야겠다는 내면의 외침에 나는 책을 펼쳐들었다. 나에게는 소리없는 드라마가 필요하다. 그래서 올해로 출간 된 지 20년이나! 되었다는 해리포터를 다시 읽고 있는데 불의 잔 중간 이후로 진도가 안나가서 이런저런 다른 책들을 읽고 있다. 예전보다 눈이 좋지 않다는 걸 실감하면서.


우리가 모두 모이는 시간, 오후 세 시 사십분. 반갑게 서로 인사하고 기뻐할 것 같지만 낮잠에서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둘째는 말이 없고, 딸아이는 나를 본 척 만 척 책가방을 벤치에 던져놓고 놀이터로 뛰어가기 바쁘다. 나는 딸아이에게 10분만 놀고 집에 가서 밥 먹고 숙제하고 태권도 가야되, 를 20분동안 외치다가 결국 화를 내고, 잠기운에서 벗어난 둘째가 놀이터에서 놀려고 하면 딸아이가 발 길을 집으로 돌리고마는 이 비극을 매일 반복하고 있다. 저녁이면 아이들에게 밥을 차려주고 낮에 읽다만 책을 펼쳐서 읽다가 이것저것 갖다달라고 부탁하는 아이들에게 나는 짜증을 내고, 아이들은 텔레비전을 보는 동안 내가 청소기를 돌려서 분노한다. 그리고 잠들기 전 우리가 하루에 같이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된다고 이러고 있나 매일밤 아이들과 함께 반성한다.


딸아이와 둘째의 잦은 싸움에 지친 어느 날, 내가 딸아이에게 앞으로 10년 뒤면 너네들은 같은 집에서 살고 있지 않을 거야, 지금까지 네가 7년을 살았는데 그 시간이 길었어, 짧았어 물어보면서 화를 내는 바람에 딸아이가 펑펑 울고 나는 몰래 울었다. 우리 사랑이 식은 게 아니고 우리가 영원히 오늘처럼 살 거라고 생각하니까 자꾸 서로에게 함부로 짜증을 내게 된다는 깨달음과 함께 앞으로 나는 애들이 학교에 가있는 동안 청소기를 돌리고 아이들이 잠든 한밤중이 아니라면 책을 읽지 않기로 다짐했다. 이렇게 별 것 아닌 깨달음과 다짐이 필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짜증스러운지 나는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비가 내려서 놀이터에 가지 않아도 되는 오늘 오후가 기쁜 내 마음도 절대로 사랑이 식어서 그런 게 아니고, 깔깔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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