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그리는 꿈

by 준혜이

2010년 8월 23일

병원에 가서 네 심장 소리를 듣고 집에 와서 멸치볶음이랑 밥을 한 그릇 먹었다. 내 뱃 속에 사람이 살고 있다니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해. 네가 건강하다고 하니까 기분이 좋고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다녀와도 괜찮다고 하니 더 좋다. 너의 아빠한테는 좀 미안하지만 외국인 여자랑 사는 게 뭐 이런거지.

2010년 8월 25일

앙상한 두 팔을 휘젓는 너의 모습이 놀라워서 아, 하고 작게 비명을 질렀어. 너는 정말 작지만 사람이구나. 자꾸만 보고 싶어, 다음 초음파 검사때는 네 사진 한 장 프린트 해달라고 해야지. 새로 사랑할 사람이 생겨서 기쁘다는 얘길 너의 아빠랑 했었어. 우리 둘, 여전히 서로 사랑하지만 사랑하기 시작할 때 같지 않고 그 때 우리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기억하고 있어서 가끔 서로를 앞에 두고 지금보다 어린 우리를 그리워했거든. 그래, 나는 사랑에 눈 멀어있지 않고서는 긴 시간 살아갈 자신이 없어.

2010년 8월 31일

네가 세상에 나오는 날, 나는 나 혼자 분만실에 들어가겠다고 했어. 내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고 너의 탄생을 독차지 하고 싶다는 이유로. 너의 아빠는 내가 가장 힘들어하고 있을 때 곁에 있어주고 싶다고 하고 너를 빨리 만나야 한다고도 했어.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다는 건 너의 아빠가 고통스러워 할 때 보고 싶지 않다는 것과 같은 의미일까, 한참동안 고민했어. 너를 독차지하고 싶은 마음도 너에게는 오직 나만 의미있는 사람이길 원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참을 생각했어. 나는 아직 성숙하지 않은 사람인 것 같아.

2010년 9월 3일

나이가 들수록 동물원이나 수족관에 가는 게 좋아져. 사람말고 이 세상에 살아있는 것들을 보는 게 신기하고 즐거워. 너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면 해. 네가 니모로 태어난다고 해도 난 놀라지 않고 잘 키울 수 있을거야. 내년부터는 네 눈으로 이 모든 것들을 직접 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기쁘지? 처음보는 것들에 숨김없이 감탄하는 너의 얼굴을 빨리 보고 싶어.


2010년 9월 24일

꿈에서 널 봤어. 난 왜 널 책가방에 넣고 자전거를 타고 다닌걸까. 꿈에서 네가 3월 9일에 태어났다고 했는데 진짜 네가 그 날 태어난다면 무서울 것 같아. 예정일이 3월 6일이니까 뭐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하루가 다르게 커지는 내 몸통을 보면서 나는 마음이 아프지만 네가 건강하게 잘 크고 있다는 증거니까 너무 슬퍼하지 않으려고. 아기를 가진 여자의 변신은 사춘기 때 가슴이 나오는 거하고는 차원이 다른 것 같아. 꿈에서 너는 딸이었는데 빨리 초음파검사 하러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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