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브라 해야 돼? 아니, 입기 싫으면 안 입어도 돼.
노브라는 여성 해방을 의미한다는 말을 열 살짜리 딸아이에게서 듣고 싶은 게 아니다. 다만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몸을 타인의 시선으로 훑어보며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하는 기분을 느끼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것뿐이다. 그래서 나는 딸아이에게 이런 말도 해봤다. 거울로 보면 네 말대로 네가 못생겨 보일 수 있어. 왜냐하면 너는 그럴 수 없지만, 나는 너를 실제로 옆에서 보고, 뒤에서도 보고, 앞에서 보고, 여기저기 한꺼번에 다 볼 수 있잖아, 그런 다음에 거울 속에 있는 너를 보면 네가 그냥 납작하기만 해서 내가 봐도 별로 재미가 없어. 어쩌면 내 눈동자 속에 있는 너를 보는 게 거울을 보는 것보다 더 나을지 몰라.
딸아이에게 한국에서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 교복 속에 속옷을 챙겨 입었나 안 입었나 선생님한테 검사를 받았다고 얘기하면 믿을 수 없어하겠지. 지금 생각해보면 미성숙한 몸에 꽉 끼는 속옷과 교복이 정신과 육체 모두를 제대로 자라지 못하게, 언제 어떻게 나타날지 모를 어떤 잠재력은 아예 싹틀 수도 없게 방해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실수를 무의식적으로 저지르긴 싫어 나는 아이의 벗은 몸 위로 물조리개를 높이 들고 물을 뿌리며 무럭무럭 자라라, 주문을 외우는 상상을 해본다. 할머니, 외할머니, 엄마, 이모, 사촌 언니, 조카, 친척 동생, 고모, 시할머니, 시외할머니, 시어머니, 시이모, 시고모. 집안 여자들을 한 번 모조리 떠올려본다.
수없이 많은 타인들이 세상 모든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거나, 훔쳐보거나, 지적하고 있다. 나는 주로 훔쳐보는 편인데 특히 소녀들의 성장은 극적으로 아름다워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고, 말문이 막히게 하는 면이 있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노브라는 안 되겠는데, 하면서 나 말고 또 누가 나의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나 주위를 둘러보게 되는 것이다. 나에게는 아주 천천히 느리게 일어난 몸의 변화가 내 아이에게 이렇게 빨리 나타나는 걸 보면 그래, 너는 내가 아니지. 하지만 가슴이 막 나오기 시작해서 굳이 브라가 필요 없을 때는 그걸 제발 사달라고 나를 조르던 아이와 이제는 꼭 입어야 될 것 같은데 불편하다고 싫어하는 아이, 아이에게 왜 속옷을 입히지 않았느냐고 나에게 귓속말을 하는 어른과 너는 왜 속옷을 안 입어? 하고 딸아이에게 물어올지 모를 브라를 입은 아이들, 웃통을 벗고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가슴은 언제 커지냐고 묻는 아들과 밥을 많이 먹으면 아빠처럼 가슴이 커질 수 있어, 대답하고 남성용 브라도 있다는데 까지 생각이 미치는 내가 어떻게 사이좋게만 지낼 수가 있겠는가.
아이가 나에게 이렇게 계속 무언가 묻고 허락을 구한다면 나는 언제나 넌 어떻게 하고 싶은데, 그러면 그렇게 해,라고 대답하고 싶다. 오늘만 해도 벌써 두 번이나 뭔가 안된다고 말해서 앞으로도 잘 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런데 내일은 왠지 좀 다를 것 같다는 기대가 생기면서 아무것도 안 했는데 피곤하다.
준혜이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